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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1946~2001)의 동화 <오세암>은 첫 장면부터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설악산 오세암의 오세동자와 백의관음보살의 설화를 바탕으로 쓴 중편 동화다.
“너희들 왜 집에 가지 않고 여기에 있니?"
“우리는 집이 없어.”
“그럼 여기서 자겠단 말이냐?”
갈 곳 없이 떠돌던 남매 감이와 길손이는 스님을 따라 절로 가게 된다. 감이와 길손이의 절 생활이 시작되고 슬픈 동화 한 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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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동화 속의 오세암을 덮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백담사에서 걸어서 두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오세암이 있다. 쉬운 길은 아니다. 설정 스님도 눈길에 막혀 끝내는 가지 못하고 길손이를 부처님 품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곳이다.
큰절을 나와 스님과 길손이가 암자를 향해 걷는다. 길손은 누나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에 길을 나선다.
“거기에도 좋은 샘이 있다니까 그러는구나.”
“스님 바보야. 내가 물 가져가는 것 같아?”
“그럼 물이 아니고 무엇이냐?”
“흰구름을 넣어가지고 가는 거야. 요 앞날 개울에서 건져왔거든.”
스님과 길손이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가끔씩 다람쥐가 따라 붙었고, 덮고 온 동화의 장면 장면이 따라왔다. 개울물이 눈물처럼 흘렀다.
설악산 오세암은 647년(선덕여왕 13)에 자장 스님이 세웠다. 스님은 관음조의 인도를 받아 관음보살님을 친견한 후 관음암을 세웠고, 설화 속의 오세동자로 인해 후에 오세암으로 바뀌었다. 작가 정채봉은 그 오세동자의 전설을 듣고 암자를 찾아 나섰고, <오세암>을 썼다.
그의 동화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늘 소년의 마음으로 살았던 그는 어른이 될 아이들을 위해,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해 동화를 썼다.
오세암이다. 노란 가을꽃이 손을 흔들었다. 풍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가을바람이 꽃과 풀을 누이고, 숲을 누이고, 산을 누이고 있었다. 길손이와 스님이 관음암에 당도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 얼굴도 모르는걸요. 정말이어요. 내 소원을 말할게요. 내 소원은 엄마를…… 엄마를 가지는 거예요.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길손이는 골방에 모셔진 관음탱을 보고 엄마라고 부른다.
이튿날, 스님은 양식을 사러 산 아래로 내려가고, 암자엔 길손이 혼자 남게 된다.
“금방 갔다 오는 거야?”
“그럼, 금방 오고말고. 길손아, 내일 내가 없는 동안 무섭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관세음보살님을 찾거라. 알았지?”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이 오셔?”
“오고말고. 네가 마음을 다하여 부르면 꼭 오시지.”
“마음을 다해 부르면? 그러면 엄마가 온단 말이지?”
가을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왔다. 산마루엔 구름이 감기고 빗줄기가 다녀갔다. 동화 속에선 큰 눈이 내린다. 산 아래로 내려간 스님은 눈길에 막혀 암자로 돌아오지 못한 채 부처님을 부르다, 길손이를 부르다 눈 위에 쓰러지고 만다.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이 아이는 부처님이 되었다.”
눈이 녹고 땅이 풀려 스님과 감이가 길손이를 찾아갔을 때, 길손이는 관세음보살 품에 있었다. 스님은 길손이한테 절을 했다. 눈을 뜨게 된 감이도 따라서 절을 했다.
장작불이 타오른다. 연기는 곧게 하늘로 올라가서 흰구름과 함께 조용히 흘러가고, 길손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던 감이는 눈물을 흘린다.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오세암에 간다면 마음을 다해서 갈 일이다. 감이는 그렇게 눈을 떴고, 길손이는 그렇게 부처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용문-오세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