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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기도 전에 “머리 아프니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들이 많다. 정치싸움판이 식상해진 사람들은 정치에 냉소와 무관심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와 정치인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평화재단(이사장 법륜)은 합리적인 사고, 문제해결능력, 리더십을 배양을 목표로 9월 3일 제3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시작했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첫 강의‘중용의 정치를 말한다’에서 “갈등을 줄여가는 것이 정치다. 정치적 사고는 상황적ㆍ조건적ㆍ과정적ㆍ종합적 사고를 하는 상대적인 것이고, 인간에 의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리더들의 동태적 균형, 건설적 타협, 창조절 철충을 바탕으로 단련된 판단, 종합적 판단을 강조했다. 현 세계정세 속에서 정치 리더들이 취해야할 자세는 중용이라며 통합시키는 힘, 중용적 구상력이 지도자의 덕목임을 강조했다.
강사: 최상용(고려대학교 명예교수, 前 주일대사)
일시: 2010년 9월 2일
주제: 정치란 무엇인가? 중용의 정치를 말한다
장소: 서울 서초이오빌빌딩 2층 강의실
주최: 평화재단
#중용이란 무엇인가?
중용은 과(過)불급(不及)이 없는 것이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것이 중용이다.
넓은 의미에서 중용은 양극이외의 열린 상태이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고 다양하다.
그렇다고 중용은 어중간한 것이 아니다. 평화가 전쟁이 없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파괴하는 부정부패, 사기, 빈부격차, 환경오염을 모두 총괄한 구조적인 파괴요소까지 없는 것이 참다운 평화인 것과 마찬가지다.
실천행위로써 중용(Mean in action)은 양극이 아닌 다양한 중간의 상태에서 적절하게 선택하는 작위적인 행위를 수반한다. 이때 적절한 선택행위를 고대 중국에서는 시중(時中), 고대 그리스에서는 ‘우리와 관련된 중용(mean relative to us)’으로 표현했다. 이 두 표현은 실제로 중용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으로 관계성과 상황성을 고려한 집중과 선택의 행위이며, 개별적 행위로는 정곡을 찌르는 행위다.
동양의 시중과 서양의 “우리와 관련된 중용”의 공통성을 나타내는 대표언어로 시중(時中)이라고 한다. 중용의 중용다움은 시중(時中)에 있다. 시(時)는 단순히 시간의 의미만이 아니라 중용의 선택을 위한 외적인 요인들, 이를테면 상황 조건 과정의 특수성을 고려한 포괄적 의미가 있다. 바로 이 점이 중용적 사고가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고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정치적 사고의 특성은 상황적이며 조건적이며 과정적이며 종합적이기 때문이다.
중용의 의미를 영어로는‘Positive Mean the mean in any given situation’ 라고 설명한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가장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의 중용이다. 논어의 공자와 공자제자가 가장 적절하게 말했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적절한 사람이, 적절한 목적으로 적정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일을 하는 것이 중용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정의는 중론이며, 중론을 정의하고 제도화한 것이 법’이라고 했다.
중간은 쉽지만 중심은 어렵다. 중용은 중간인 동시에 중심이 돼야한다. 중간인 사람은 있지만 중심을 잡은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중심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다. 동양과 서양의 중용은 중간인 동시에 중심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궁사가 과녁을 겨냥하는 긴장감으로 집중력하는 것이 ‘중용’이다. 맹자는 정곡을 찌르는 것을 중용이라고 한다. 정곡을 찌르는 것은 쉽지 않다. 정보 지식 판단력도 있어야 한다. 정곡을 찌르는 시중은 어렵지만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시중하는 리더가 되길 바란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용에 대한 정의가 같다. 동서의 정치사상 중 가장 연속성이 강하고 생명력이 강한 개념이 중용(中庸, Mean)이다. 어떤 지적 소통도 불가능했던 시절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에서 어떻게 똑같은 중용의 의미가 나올 수 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도로 단련된 판단이 중용이라고 말한다. 정의는 판단에 기초한다고 설명한다. 플라톤의 정의는 중용이고 중용을 제도화 한 것이 법이라고 해서 정의와 중용 법을 일률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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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적 사고는 정치적 사고의 진수
정치적 사고는 상황적ㆍ조건적ㆍ과정적ㆍ종합적 사고다. 정치적 사고는 운명적으로 상황적이다. 정치적 사고는 그들 주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가 없다. 정치적 사고는 어디까지나 어떠한 조건하에서 설명이나 예측이 가능하며 고정불변한 대상에 대한 사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사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된 절대적 진리를 대상으로 하는 사고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정치적 사고는 ‘상대성’ 본질적 속성이다. 정치적 사고는 궁극적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이나 과학 그 자체와 달리 이상과 목적을 향한 과정을 문제 삼는 사고가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치적 사고는 상황적 사고 ? 조건적 사고 ? 상대적 사고 ? 과정적 사고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단일의 상수가 아니라 복잡한 변수를 고려에 넣는 종합적 사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봤을 때 중용적 사고는 상황 조건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상대적 사고란 점에서 정치적 사고의 원칙과 방법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 세계에서는 통념의 한계를 넘고 복잡한 변수들이 얽히고 설키어 있기 때문에 선에서 악이 나올 수도 있고 악에서 선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정치의 결정과정에는 최선이 차선의 적(敵)인 경우도 있다. 이 세상의 불합리한 경험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원천이며 정치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차세(此世)의 불합리를 초월적으로 구제하려는 것이 종교라면 그것을 책임윤리에 바탕을 두고 현실 속에서 해결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정치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문제, 정치의 문제를 윤리적 합리주의로 설명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판단은 신이 한다.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판단이 중용이다. 법률은 중용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최선은 신의 영역이며 최악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해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최악과 최선 사이의 다양한 가능성속에서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적절하게 선택한 것을 가능한 최선, 즉 시중(時中)을 해야한다.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정치적 선택은 거의 예외 없이 시중(時中)의 선택인 것이다. 이처럼 초월적 최선을 상정한 종교와는 달리 가능한 최선을 추구하는 정치영역에서의 중용을 나는 정치적 중용이라 부른다. 정치적 중용은 시중(時中)의 정치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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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이 정의고 보수와 진보의 공유의 가치다
중간파에게 중용을 권하고 싶지 않다. 중간파는 어떤 기간 약간의 중재역할을 하지만 정치계 세력은 역시 보수와 진보다. 물론 상대적이다. 역사가 있는 한 보수와 진보는 영원한 상응작용을 한다. 보수와 진보가 절대화, 극단의 시대에는 중용이 개입할 수 없다.
진보는 탈 급진해야하며, 보수는 꾸준히 자신을 개혁해야한다. 탈냉전시대에서 정치는 선취경쟁이다. 먼저 선취한 사람이 정치적 승리를 한다. 이때 중용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세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이미 보수가 아니다. 보수(保守)는 보수(補修)다. 집의 골조를 부수는 것은 혁명이다. 순리를 보수하는 것이 보수다. 순리를 보수하겠다 그것도 하지 않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품격있는 좌파, 깨끗한 우파가 있으면 좋겠다. 늘 보수는 부패와 가까웠으며 좌파는 뭔가 위선적이고 부실하면서 통치능력이 떨어졌다. 좌파가 탈급진을 하고 우파가 자기를 보수(補修)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사회다.
지난 5년 좌왕 우왕 10년을 고생하고 있다. 이것을 다하면 중용적 구상을 하는 보수든 진보든 나올 것이라고 본다. 언밀한 의미에서 정의는 아니다. 시민 민주주의. 중용은 건설적인 타협 창조적인 절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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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본 ‘중용’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용에 대한 정의 개념에 앞서,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 (A Theory of Justics)>과 롤스의 제자 마이클 샌들(Michael J. Sandel)이 <정의론>을 비판한 를 소개했다.
최상용 명예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존 롤스는 중용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않았지만 <정의론>을 이야기하는데 중요개념(key concept)은 바로 중용이다”이라며 롤스와 샌들의 책을 중심으로 중용에 대한 창조적 해석을 함께 해 볼 것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역사상 최초로 정의를 논한 책은 플라톤의 <국가론>이다. <국가론>의 부제는 ‘정의에 관하여’이다. 하지만 이들은 책에서 미국의 철학자들은 플라톤을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사상적인 원흉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 플라톤의 중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음을 염두하고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플라톤은 리더가 공적인 헌신을 하기 위해서는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급진적인 개혁을 한 사람이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정의론>에서 존 롤스가 정의에 관한 난해한 개념을 풀어가는 중요개념들이다. 그는 중용을 이야기 않았지만 이 정의론을 이야기하는데 중요개념은 바로 중용이었다. 나름의 번역을 하기에 앞서 참가자들과 개념에 대한 적확한 한국어 표현을 찾으려 했다.
1.burden of judgments ‘판단의 멍에’‘판단의 중화’?
우리는 가정, 사회 등에서 수많은 판단을 하면서 살고 있다. 조그만한 조직 회사에서 판단해야할 일이 많다. 우리는 판단의 노예다. 매일 판단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전하고 부담되는 것이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할 만큼 부담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답을 내어 놓는다. 답이 너무 많아 엉망일 테지만, 획일적인 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쌓이고 쌓인 단련된 답을 요한다. 이렇게 답을 만들어 가는 사고 과정이 중용이다.
2. considered judgment in reflective equilibrium ‘성찰적 균형 속에서 사려 깊은 판단’?
정치, 비정치, 윤리적 주장 등을 듣는 것과 동시에 지적ㆍ성찰적 균형 속에서도 사려 깊은 판단을 해야 한다. 정보, 지식, 사색, 경험을 총 동원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성찰하면서 그 균형 속에서 사려 깊은 판단을 해야 한다.
3. overlapping consensus ‘중첩된 합의, 합일’?
각자의 의견 중 내용이 중첩된 부분, 즉 최대공약수 같은 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답이 1번 처럼 부담스러운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다. 중용의 선택은 그 시점에서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상대적인 최적(最適)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