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법규위원회가 백양사 고불총림의 총림 지위의 정당성을 묻는 청구건을 본안 상정했다. 하지만 안건은 “사안의 방대성과 민감성을 고려해 법규위 회의에서 세밀히 논의한 후 종회에 이관하자”는 법규위원 다수의 의견에 따라 종회에 바로 상정하지 않고 차기 법규위원회 회의에서 논의키로 했다.
조계종 법규위원회(위원장 성천)는 8월 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65차 회의를 열고 의연ㆍ무공 스님이 청구한 ‘백양사 고불총림 유지의 종헌종법 위배 심판청구’건 예비심사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법규위원 전원이 참석한 회의에서 예비심사는 청구인인 중앙종회의원 의연 스님과 백양사 주지 시몽 스님이 각각 법규위원들에게 소명ㆍ질의응답한 후 법규위원들이 논의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부실한 총림운영, 방장의 전횡이 문제”
청구인 의연 스님은 “1996년 제120회 중앙종회는 고불총림을 지정하면서 서옹 스님 생전이라고 시한을 정했다. 서옹 스님 열반과 함께 총림 자격은 자동소멸 됐다고 봐야 하는데도, 총림 지위가 그대로 유지돼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침해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스님은 “중앙종회가 서옹 스님 입적 이후 고불총림의 총림 지정 요건을 다시 살펴 재지정하지 않고 현 방장 수산 스님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한 것은 절차상 위배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의연 스님은 지산 스님의 “산중총회에서 현 방장스님을 다수가 추대했다”는 지적에 “그때는 고불총림 지정에 법적 하자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또, “현재 고불총림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본사내부 문제이기는 하지만 간판만 율원ㆍ염불원이다. 백양사 고불총림의 운영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의연 스님은 “방장스님이 주지 시몽 스님을 일방적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대중들은 총림은 개인 절이 아니라는 충언을 방장스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면서 “방장스님이 절 살림살이에 관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총림 지정 원하는 사찰 줄 섰는데…”
백양사 주지 시몽 스님은 “다른 본사는 총림 지정을 원하고 있는데 백양사가 이런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 총림 지정 당시 지선 스님이 일을 봤는데 서옹 스님이 열반하셨다는 이유로 이제와서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백양사 고불총림이) 총림으로 부족한 부분은 시간을 두고 발전시키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총림 운영과 관련해 시몽 스님은 의연 스님과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시몽 스님은 “고불총림의 강원은 군소 규모로 전락했지만 의연 스님 말처럼 9명이 아니라 19명이 상주하고 있다. 선원에는 20여 명이, 율원에는 6명이, 염불원도 4명이 상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장 수산 스님의 상좌인 만당 스님(총무원 기획국장)은 “총림 지정은 총무원장의 제청으로 종회에서 가부가 지정된다. 조건부 지정이 되면 총무원장의 제청권을 침해하게 된다. (고불총림 지정이) 조건부 지정이었다면 총무원장 제청을 수정ㆍ요청했어야 한다”며 “1996년 당시 백양사의 고불총림 지정은 조건부 지정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총림법은 총무원장 제청으로 중앙종회가 지정한다. 총무원장의 지정제청서에 아무런 조건이 없으므로 조건 없는 완전한 총림 지정으로 봐야한다. 법 절차상 자동해제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규위서 꼼꼼히 따져 종회로 넘기자”
법규위원들은 고불총림 지정이 ‘조건부’였는지에 대해서는 의연 스님의 손을 들어줬다.
경선 스님은 “당시 중앙종회 회의록을 보면 단서조항이 확실하게 나타난다. 결의 내용에는 총림 지정 요건이 명시되지 않았어도 조건부인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범선 스님도 “회의록에 종회의원 성문 스님이 ‘조건 붙인 것을 그대로 두고…’라는 발언이 있다. 또, 의장스님도 ‘빠른 시일 내에 조건을 갖출 것’을 요청한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조건부 지정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법규위원 사이에서는 “중앙종회와 총무원의 직무유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화범 스님은 “고불총림의 총림 지정은 조건부 승인이 확실한데도 종헌 제91조ㆍ제103조의 규정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총림지정이 이뤄졌다. 제2대 방장을 추대하는 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검토가 없었던 것은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법선 스님도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며 중앙종회의 고불총림 지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안건의 본안 상정 후 법규위원들은 “총무원ㆍ중앙종회 등 관계기관애 소명과 자료를 요청해 자세히 살펴보자”는 의견과 “안건을 총림의 지정ㆍ해제 권한이 있는 중앙종회로 넘기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팽팽히 맞섰다.
정호ㆍ지산ㆍ법선ㆍ평상ㆍ무상 스님이 법규위 재검토론을 주장한 반면, 경선ㆍ화범ㆍ성일 스님은 “중앙종회로 넘기자”고 주장했다. 이에 위원장 성천 스님은 “다수 스님들의 의견에 따라 자료를 더 요청해 다음 회의에서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마무리했다.
법규위원회의 이날 결정으로 이변이 없는 한 고불총림의 총림 지위에 관한 최종 심판은 종회에서 있게 됐다. 하지만 다음 회의에서 다루기로 함에 따라 9월 6일 열리는 제14대 마지막 임시중앙종회가 아닌, 제15대 중앙종회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