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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 대웅전 뒷편에는 신라시대 조성된 연못이 있다. 구룡지이다.
통도사를 수호하는 용이 산다는 연못이지만 지금은 용 대신 내방객들이 던진 동전만이 가득하다. 이곳에 모이는 동전은 한해 얼마일까?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은 “한해 구룡지에서 걷히는 동전만 2000여 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스님은 “무분별하게 동전이 던져져 연못이 훼손돼 (주지 취임 이후) 연화대를 설치했다”면서 “구룡지에서 모이는 돈은 초등학교 무료급식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8월 24일 경인년 하안거 해제일을 하루 앞두고 기자들을 만난 자리였다.
정우 스님이 통도사 주지에 취임한 2007년 이후 통도사는 많이 바뀌었다. 금강계단 사리탑만 해도 1년에 3회(음력 3월 보살계 수계법회, 4월 부처님오신날, 9월 개산재) 개방되던 곳이 스님이 주지가 되고 나서 24시간 개방됐다.
낙산사 화재가 있은 후에는 화마로부터 문화재 등 삼보정재를 지키기 위한 방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도량 인근 나무들이 보기 좋게 간벌 됐고, 소나무며 차나무 연꽃 등이 방치되던 경내지 곳곳에 심어졌다. 소방수 확보를 위한 연못도 조성됐다. 1000여 명이 동시에 공양할 수 있는 식당이 세워졌다. 낙후된 화장실 8곳도 정비됐다. 절 울타리는 걷혀졌고 도량 입구 계곡에는 분수가 세워졌다. (이 날도 통도사 계곡에는 아이들이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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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스님은 “통도사는 조선후기 이곳에 주석하던 성해 스님의 두 제자, 구하·경봉 스님이 일구고 구하 스님의 상좌인 월하 스님과 경봉 스님 상좌인 벽안 스님으로 법맥이 이어지고 가풍이 전해져왔다”고 설명했다. 정우 스님은 월하 스님의 손상좌이다.
정우 스님은 “통도사는 1400년간 농사를 지으며 <백장청규>의 ‘선농일치’를 실천해 온 도량이다”라며 “영축총림의 가풍을 살려 영농법인을 설립해 차 등을 생산하는 등 생산불교에 초점을 맞춰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도사 경내지 10만평에서 생산되는 쌀은 한해 1000여 가마니이다.
스님은 “벼농사를 짓다보면 농비가 더 든다”면서도 “쌀농사는 지어야 한다. 사중에서 남는 쌀은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정우 스님은 안거 해제와 관련한 질문에 “나는 사판승이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수행은 참선·염불 어느 하나만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수행은 어디에도 메이지 않고 근본을 잃지 않으며 자기 모습을 찾아지키는 그 모습입니다. 또, 누군가 해야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통도사가 실천해 온 자비나눔은 ‘누군가 해야할 일’이었다.
통도사는 20여 년 전 월하 스님이 세운 복지재단을 기반으로 16개 시설에서 400여 근무자가 자비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통도사 부도밭에는 옛부도가 50기 있습니다. 1400여 년 통도사 역사로 비춰볼 때 30년마다 통도사와 한국불교를 이끌 인물이 났다는 것이지요. 한국불교의 중심인물을 배출해 온 도량에 걸맞는 노력을 앞으로도 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