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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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속의 문화읽기-16. 순천 불일암(佛日庵)-법정 스님의 별나라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무소유-미리 쓰는 유서]중에서.

그리고 30년이 지난 2010년 봄. 그는 한 그루 나무 곁으로 돌아온다. <무소유>의 법정(法頂ㆍ1932~2010) 스님이다. 스님은 열반에 들었고, 다비를 치른 유골은 손수 심었던 불일암 후박나무 곁에 모셨다.

불일암은 순천 송광사의 산내 암자로, 송광사의 제7세 국사인 자정 스님이 자정암으로 창건했다. 몇 차례 중수를 거듭한 암자는 한국전쟁으로 퇴락했고, 1975년 법정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이라는 편액이 걸렸다. 스님은 17년간 이 곳에 머물렀다.

스님은 충남대 3학년을 수료한 후 1956년에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비구계를 받고 난 후에는 역경 불사와 <불교사전> 편찬 등에 매진했다. 4ㆍ19와 5ㆍ16을 겪으며 유신철폐 개헌서명운동에 동참했던 스님은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혁당 사건이 후 산으로 돌아간다. 스님은 불일암을 손봐 이곳에서 홀로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6년 <무소유>가 출간된다. 간디와 함께 스님이 영향을 받았던 소로우가 월든 숲으로 들어가 그의 대표 저서인 <시민의 불복종>을 썼던 것처럼, 스님은 산으로 들어가 <무소유>를 썼다.

한바탕 비가 지나가고 바람이 불어왔다. 2km 남짓의 불일암 가는 길은 편백나무숲과 대나무숲이 이어진 오솔길이다. 침묵으로 서있는 편백나무 숲과 천년의 소리로 쓸려다니는 대숲의 오솔길은 주인을 닮아가고 있었다.

<무소유>는 인쇄를 거듭했다. 스님의 불명(佛名)은 종교를 초월한 이름이 되었고, ‘무소유’는 별호처럼 스님의 이름을 따라 다녔다. 걱정스러운 시절을 걱정하던 한 선지식은 ‘소유’를 위해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무소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중략>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무소유>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다. 173쇄를 찍었고, 3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2010년 3월 11일, 스님은 원적에 들었다. 장례는 간소했다. 간소한 삶을 찾아 떠나는 마지막 길이었다. 스님의 유골이 모셔진 후박나무 곁에는 스님이 생전에 손수 만들어 앉았던 ‘빠삐용 의자’가 조계산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어린왕자의 별나라가 불일암이었을까.

언젠가 스님은 어린 왕자에게 편지를 썼다.
‘어린 왕자! 지금 밖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 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 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이런 메아리가 울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무소유-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불일암에 간다면 어린왕자의 마음으로 갈 일이다. 빠삐용 의자에 앉은 스님이 어린 왕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ㆍ사진=박재완 기자 | wanihollo@hanmail.net
2010-08-19 오전 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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