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라가 위태로웠던 칠십년대 말쯤 / 아내와 어리디어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 고향 떠난 지 삼십년 만에 / 내가 태어났던 태안사를 찾았다. <중략>
그리고 두 번째로 / 임신년 겨울, / 팔십을 바라보는 어머님을 모시고 / 아내와 이젠 웬만큼 자란 아이들을 데리고 / 터버터벅 태안사를 찾았을 땐 / 백골이 진토된 / 증조부와 조부와 아버님이 / 청화 큰스님이랑 함께 / 껄껄껄 웃으시며 우리들을 맞았다.’ [태안사 가는 길 1]
‘국토’, ‘식칼론’의 시인 조태일(趙泰一ㆍ1941~1999)은 30년 만에 자신의 탯자리인 태안사를 찾는다. 그의 아버지 조봉호는 대처승으로 태안사의 주지였다. 아침저녁 아버지의 목탁소리와 독경소리를 들으며 자란 조태일은 여순사건 때 아버지를 따라 태안사를 떠나게 된다. 7살 때였다. 그가 태안사를 30년 만에 찾은 것은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다. 12살 때였다.
“나 죽고 30년이 지난 다음에나 고향 땅을 다시 찾아라.”
그 유언은 7남매 중 넷째였던 그에게만 남겼다고 한다. 왜 30년 뒤인지, 왜 자신에게만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조태일 자신도 평생 모르고 살았다.
| |||
한바탕 소나기 지나간 숲에서 매미가 뜨겁게 울어댔다. 숲길 끝에 난 일주문엔 노을이 비꼈고, 닫힌 대웅전 어간 뒤에서는 부처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2년(742)에 신성한 승려 세 분이 창건한 것으로 사적에 전해온다. 그 후 혜철(慧徹)국사가 당나라에서 법을 전수받고 돌아와 구산선문의 동이산파를 이루었다. 고려에 접어들어 광자대사가 절을 크게 일으켰고, 정유재란과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3년 9월 7일, 태안사 길목에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이 세워진다. 시인의 4주기 때였다. 시인은 한 시절도 편안한 시절 없이 살다갔다. 일제강점기, 여순사건, 한국전쟁, 4.19, 5.16…. 그리고 온 국민이 민주주의를 갈망하느라 고단했던 시절까지. 특히 그 시절은 그를 뜨겁게 달구고 차가운 삶 속으로 내몰았다. 시집의 판매금지와 투옥. 역사는 어두웠고, 시인의 삶도 어두웠다. 그는 시를 쓰는 것으로 어두운 역사 곁에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시가 ‘국토’와 ‘식칼론’이다. ‘뼉다귀와 살도 없이 혼도 없이 / 너희가 뱉는 천 마디의 말들을 / 단 한방울의 눈물로 쓰러뜨리고…’<후략> [식칼론 2]
그의 시들은 한 방울의 눈물이었고, 시인은 그 눈물로 고단한 시절을 버텨야 했다.
| |||
‘모든 목소리들 죽은 듯 잠든 /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1리 // 九山의 하나인 桐裡山 속 / 泰安寺의 중으로 / 서른다섯 나이에 열일곱 나이 처녀를 얻어 // 깊은 산골의 바람이나 구름 / 멧돼지나 노루 사슴 곰 따위 / 혹은 호랑이 이리 날짐승들과 함께 / 오손도손 놀며 살아가라고 / 칠남매를 낳으시고 // 난세를 느꼈는지 / 산 넘고 물 건너 마을 돌며 / 젊은이들 모아 夜學하시느라 / 처자식을 돌보지 않고 // 여순사건 때는 / 죽을 고비 수십 번 넘기시더니 / 땅뙈기 세간 고스란히 놓아둔 채 / 처자식 주렁주렁 달고 / 새벽에 고향을 버리시던 아버지. // 삼십년을 떠돌다 / 고향 찾아드니 아버지 모습이며 음성 / 동리산에 가득한 듯하나 // 눈에 들어오는 것 / 폐허뿐이네 적막뿐이네.’ [원달리의 아버지]
| |||
위의 시 한 편이 시인 조태일과 그 일가의 역사다. 노루 사슴, 심지어 호랑이 날짐승과도 오순도순 살아야 했던 시인이 ‘국토’나 ‘식칼론’과 같은 거친 숨소리를 쏟아내야 했던 것은 어두운 시절이 지게 한 짐을 기꺼이 졌을 뿐 그의 본성은 아니었다. 그의 다른 시에서는 곡괭이에 찍혀 나온 병사의 백골이 눈 시린 동자승이 되고, 처녀 적에 달빛을 좋아해 늘 울멍울멍했다고 나오는 누나는 태안사 염불소리 들으며 영남땅에 누워 있다고 나온다. 그의 만년의 시들은 노루 호랑이와 오순도순 놀던 동심으로 돌아가 쓴 시들이다. 결국 조태일 시의 시작점과 귀착점은 태안사였던 것이다.
저녁 구름이 석탑 위로 몰려왔다. 태안사에 간다면 노루, 사슴, 호랑이, 날짐승과도 오순도순 살 수 있는 동심으로 갈 일이다. 시인의 가슴으로 갈 일이다. 시인이 되어 일주문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