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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팔상전 뜰에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때는 단풍나무가 풋고추처럼 파랬다. 유난히 싱그러운 모습에 눈이 갔었다. 바람 한 점 없었던 그 날, 목마른 햇살이 나뭇잎에 묻어서 초록을 조금씩 물어갔다. 몇 해 지나 가을에 가봤더니 단풍나무가 없었다. 그루터기만 남아 마른 낙엽에 휩쓸리고 있었다.
말없이 이사 가버린 어릴 적 한동네 여자아이처럼 섭섭했다. 대문 앞에서 이름만 부르다 그냥 돌아왔던 그 때처럼 사연도 묻지 못하고 그루터기만 바라보다 돌아왔다. 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연도 물을 새 없이 떠나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