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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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ㆍ보현행원ㆍ구국구세’ 불광사상 주축
불광연구원 ‘전법보살 광덕 스님의 사상ㆍ업적’ 체계적 연구 돌입…매월 연찬회 열어 심층 조명
광덕 스님(1927~1999)


숭유억불로 홀대 받던 한국불교가 근대화와 서구화의 격랑 속에서 좌초하지 않고 지금처럼 발전하기까지는 새의 두 날개처럼 한국불교를 받쳐준 선지식들이 있어 가능했다. 수행(修行)과 정법(正法)을 위해 신명을 바친 선승들과 교화(敎化)와 전법(傳法)을 위해 헌신한 큰 스님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 고승들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연구경향은 주로 수행승이나 학승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왔다. 반면 포교와 전법에 매진한 선지식들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간과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불광연구원(이사장 지홍)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전법보살(傳法菩薩)인 광덕 스님(1927~1999)의 사상과 업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년에 5차례에 걸쳐 10개의 연구주제를 발표할 계획을 밝히고, 7월 10일 첫 학술연찬회를 열었다.
이날 연찬회에 앞서 불광사(회주 지홍)는 잠실 불광사 교육원 강당에서 내외 귀빈들이 모인 가운데 불광연구원 개원식을 갖고, 광덕 스님의 사상을 연구할 연구진을 위촉했다.
연구 실무를 총괄할 책임연구원에는 서재영 박사(前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가, 객원연구진으로는 석길암(금강대 연구교수), 목경찬(불광교육원 교수), 김영진(인하대 연구교수, 최원섭(성찰사상연구원 연구원), 이진영(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이종수(원각사상연구원 연구원)박사가 위촉됐다.
불광연구원은 개원식을 시작으로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불광사 교육원 강당에서 학술 연찬회를 갖고 광덕 스님의 사상과 불광운동을 심층적으로 조명해 나갈 계획이다.

이날 첫 연찬회에서는 ‘광덕스님의 사상과 불광운동’의 주제로 스님의 삶과 사상을 조명했다.
김재영 박사(불교학ㆍ 청보리회 법사)는 ‘광덕스님의 삶과 불광운동’을 주제로, 김선근 교수(동국대 인도철학과)는 ‘광덕스님 사상의 개요’를 주제로 발표했다.

#광덕은 곧 불광, 불광은 곧 광명
김재영 박사

김재영 박사는 “광덕 스님의 불광사상은 불가의 전통적인 수행에 의해 성숙되기 이전, 그의 치열한 생존의지에 의해 단련됐다”며 스님의 성장사를 고찰했다.
광덕 스님의 성장과정은 매우 곤궁하고 암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7년 경기도 오산에서 평범한 소농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광덕 스님은 생계문제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채 형의 도움으로 통신강좌를 이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태평양전쟁이 일어났고, 1942년인 16세 때 형과 아버지가 돌아갔으며, 1947년에는 어머니가, 1949년에는 어머니 노릇을 대신하던 둘째 누님과 매형이 이승을 떠났다. 김재영 박사는 “스님은 둘째 누님을 산에 묻고 내려오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내며 ‘마치 배수관에서 물이 흘러나오듯 눈물이 줄줄 흘려내려 닦을 수 조차 없었다’고 회고했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살림, 고향 떠남, 진학좌절, 형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누님의 죽음, 폐결핵 등…. 성장과정에서 광덕 스님이 겪은 바위덩어리 같은 절망과 어둠은 개인적인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김재영 박사는 “그가 살았던 1930~60년대, 즉 일제강점과 해방, 한국전쟁, 이승만 독재, 군사혁명과 유신 등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청년 광덕은 깊이 고뇌했고, 좌우분열과 극한적 대립상황에 매우 괴로워하며 친구들과 밤 세워 토론하곤했다”며 “이러한 고뇌는 출가 이후의 삶에서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덕 스님은 젊은 날의 고뇌를 안고 1950년 24세 때 범어사로 입산했다. 사미계를 받고 10여 년의 행자생활을 겪고 1960년 34세 때 득도를 했다. 스님은 용성(龍城)ㆍ동산(東山)ㆍ소천(韶天) 등 한국불교의 걸출한 선각자들로부터 법맥을 이어 받았다.

김재영 박사는 “용성 스님의 대각구세운동, 동산 스님의 선풍진흥운동, 소천 스님의 금강경구국운동이 불광사상의 토양이 되고 불광운동의 선구가 됐다. 실로 광덕 스님은 행운아”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박사는 “스님의 삶의 가난과 시대적 고뇌 속에서 단련된 투명한 감성과 문제의식이 불광사상ㆍ불광운동 전개에 결정적 조건으로 작용했다”며 “스님은 어둠과 죽음의 공포앞에서 광명과 생명을 갈망하고 있었다. 스님의 치열한 빛찾기 의식은 반야바라밀(교학ㆍ철학적 중심)ㆍ보현행원(실천동력)ㆍ구국구세(실제적 실천방향) 등 불광사상의 구조적 중추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 세 가지 불광사상의 기본 담마를 주요로 한 활동은 △법회 법등활동-일요법회, 어린이법회, 중고생 법회 △찬불가포교활동-보현행원송 등 △문서포교활동-월간불광 등 △인터넷포교 △교육연구활동- 불광유치원, 불광대학 △다양한 기능별 봉사활동- 어린이 청소년 가족단위 봉사활동 등 △생태환경운동 등을 전개하며 새로운 불교의 지평을 열어갔다.

바라밀 운동회에서 참석대중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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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박사는 “이런 다양한 기능중심의 활동들이 불광운동이 주력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이며 변혁프로그램들”이라 평가했다.
이어 김 박사는 “광덕 스님이 열반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만큼 광덕 스님이 많이 잊혀져 가고 있다. 불광운동의 이념과 열정도 상당부분 소강상태인 것으로 봐야한다. 이럴 때 일수록 불광운동의 이념을 살려내고 확산시켜야 한다”며 개척과제를 제안했다.
김재영 박사는 광덕 스님 생전에 실시됐던 포교사 교육제도를 새롭게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일반 불교대학, 교양대학 방식의 불교지식인 육성은 별로 의미가 없다. 불광포교사ㆍ불광상담사ㆍ불광자원봉사자ㆍ불광복지사ㆍ불광환경운동가 등 불광사상과 전문교육 과목학습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불광사상의 개척작업이 성공하려면 불광운동의 에너지원인 불광법회의 열정과 감동이 부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영 박사는 “법등은 불광 운동의 실체며 주체다. 법회의 에너지는 법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직되고 법등 본래의 이념인 전법운동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서대문ㆍ마포ㆍ도봉구ㆍ부산ㆍLA불광법당, 청년ㆍ연예인ㆍ기업인 불광법당 등 지역별 직능별로 나누어 활성화 시켜야 한다. 이것이 광덕 스님의 서원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재영 박사는 “본래 사찰은 민중들의 쉼터였고 재활센터였다. 사찰을 일컫는 vihara(精舍)가 바로 hospice(임종치유)를 의미한다. 갈 데 없고 굶주린 사람들이 절로 모여와 함께 살았다”며 “동남아 불교국가에서는 병원ㆍ보육원ㆍ요양원 등을 지어 사회복지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국의 사찰도 불상 중심의 가람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쉼터와 교육장 중심으로 개혁한다면 평생을 중생의 병고로 괴로워한 광덕 스님의 뜻을 진실로 계승하는 불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광덕 스님은 마하반야바라밀 사상을 바탕으로 법등 운동 전개

김선근 교수

김선근 교수는 “광덕 스님의 사상은 크게 선사상ㆍ반야사상ㆍ화엄사상이 잘 어우러져 통섭돼 불광사상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광덕 스님은 은사인 동산 스님의 간화선 지도로 스스로 체득한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 원천적인 부처님의 세계를 ‘반야바라밀’이라고 했다. 이런 체험을 통해서 나타난 스님의 사상은 <육조단경>에서 혜능 스님이 ‘항상 마하반야바라밀을 생각하라’고 한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김선근 교수는 “이처럼 선가의 전통을 계승한 스님은 모든 사람을 깨닫게 해 가슴 가슴마다에 진리가 용솟음치게 하는 불광사상을 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스님이 영향을 받은 반야사상에 대해 “스님의 ‘마하반야바라밀’사상은 소천 스님의 영향을 받아 <금강경>의 반야사상을 창조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며 “스님의 여러 저서에 나타난 마하반야바라밀의 사조(思潮)들을 분석해보면 스님은 <금강경>의 제5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등의 영향을 받아 스님의 방식으로 채색돼 창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광덕 스님의 화엄사상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의 영향을받아 ‘보현행원’으로 창조됐다. 김선근 교수는 “스님께서 보현행원을 개인적으로는 부처를 이루고 사회적으로 불국토를 성취하는 법성신(法性身)의 윤리라고 해석한 것은 탁견”이라며 “이러한 논리로 스님으 s사회와 역사에 있어서 불자들이 담당할 의무를 보현행원으로 해석했다. 스님이 보현행원을 법성신의 윤리로 해석한 것은 회통성의 논리”라고 주장했다.

불광법회는 지금도 스님의 사상을 계승해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를 바탕으로 생활에서 보현행원을 실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세 가지의 사상이 잘 아우러져 스님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길을 법등운동으로 전개했다”며 “이는 한국불교에 새로운 ‘신행모델’을 제시한 것이며 광덕 스님은 현대의 ‘전법보살’이다”고 평가했다.
이나은 기자 | bohyung@buddhapia.com
2010-07-18 오후 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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