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세기 동안 서양사상과 종교, 문화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산업혁명과 1ㆍ2차 세계대전, 그리고 세계대공황을 겪으며 다다이즘, 제로운동, 플럭서스, 아방가르드 등 다양한 문화, 예술적 사조가 등장한 것이다.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서양 문화와 사조에 동양의 선(禪)사상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찰하는 연구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윤양호 원광대 교수는 6월 11일 동국대 다향관에서 열린 한국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 ‘현대문화와 선사상: 서양문화를 중심으로’를 통해 서양 문화에 미친 선 사상의 영향을 조명했다.
윤 교수는 “산업혁명, 1·2차 세계대전, 경제공황 등 시대적 공황상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던 기존의 종교는 그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게 되자 서양인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내면적인 감성과 새로움에 대한 인식들을 반사회ㆍ반문화ㆍ반예술ㆍ반종교적인 표현들로 표출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초엽 일본 선에 영향을 받은 모네의 ‘수련’연작을 필두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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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는 “1904년 모네는 자신의 집에 직접 일본식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에 동양의 식물들을 심고 가꾸며 동양문화를 자신의 삶에서 구현하며 변화를 가졌다. 그는 정원을 가꾸며 수련 등의 작품을 만드는데 이러한 노력은 일본문화가 서구에 확산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1915년에 등장한 다다이즘은 “수많은 모순을 잉태한 전통의 모순은 모두 무(無)로 되돌려서 백지 상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표방한다.
윤 교수는 “기존의 전통 질서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다다이즘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면 송두리째 허물어버리는 자세인 선의 칼날 정신에 닿아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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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한 관심은 1922년 헤르만 헤세가 쓴 <싯다르타>로 인해 더욱 증가한다. 싯다르타는 당시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유럽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됐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겪은 서양인들은 정치와 종교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불교는 그 새로운 사상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불교는 절대적인 힘의 논리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관조해 삶의 지혜를 스스로 찾아가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윤 교수는 아방가르드와 제로 운동, 플럭서스(Fluxus), 포스트모더니즘, 히피 문화의 등장을 사례로 서양 문화와 선의 영향을 조명했다.
제로운동은 1957년에 나타난 예술가들의 집단운동이다. 윤 교수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은 삶의 존재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고 이러한 대안으로 불교와 선사상을 접목했다”고 설명했다.
1962년에 나타난 플럭서스는 고급 예술을 멀리하고 대중 예술을 지향해 퍼포먼스와 유연한 글쓰기, 실험주의, 우상 파괴, 미니멀리즘 등을 특징으로 한다. 윤양호 교수는 “플럭서스는 전통질서에 대한 반발과 거부를 넘어 사고의 유연성과 깊이를 보여준다. 그로 인해 종교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선 사상이 서구 사회에 확산되면서 전통 종교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일본과 베트남 등의 나라에서는 불교를 서양에 전파하는데 일찍부터 힘써왔지만 우리나라는 숭산 스님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선 불교 전파를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윤 교수는 “선사상과 불교문화예술은 1900년대 초기 주로 일본, 중국, 티베트, 베트남,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네팔 등의 나라에서 많은 승려들과 서적들이 건너가 번역되고 소개 됐으나 한국불교의 경우 1980년대부터 숭산 스님의 큰 역할로 소개되기 시작했다”며 “아직도 한국불교와 한국 선에 대한 인식은 미진하다. 이 부분은 앞으로 계속된 연구와 함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