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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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속의 문화읽기-12. 봉화 청량사(淸凉寺)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
<청량사의 소도, 최씨의 소도 모두 보살이었다>

“이 소하고 나하고 같이 죽을 거다.”
“소하고? 소가 먼저 죽으면 어떡할 거예요? 장사 치러 줍니까?”
“치러 줘야지. 내가 상주질 할 건데.”

마른나무 한 아름씩을 나눠지고 팔순의 농부와 마흔의 소가 저녁길을 걷는다. 팔순의 지게가 쓸쓸하게 흔들거리고, 마흔의 달구지가 힘겹게 워낭을 흔들어댄다. 지난 해 1월에 개봉했던 영화 ‘워낭소리’다.
30년을 함께 살아온 늙은 농부와 늙은 소의 이야기를 저예산 스크린에 담은 영화는 300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의 첫 장면을 청량사에서 찍었다.

수려한 청량산의 풍경 속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청량사는 높고 경사가 급해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유리보전(琉璃寶殿) 앞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석탑을 바라보고 서있는데, 영화에서는 최씨 내외가 이 소나무 아래서 석탑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린다. 소나무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원효대사가 청량사를 지을 때였다. 스님이 사하촌에서 농부를 만났는데, 농부는 뿔이 셋이나 달린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소가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스님은 농부에게 시주를 청했고 농부는 흔쾌히 스님께 소를 시주했다. 신기하게도 스님을 따라온 소는 고분고분해지더니 청량사 불사에 필요한 목재와 물건을 힘든 길을 오르며 모두 날랐다. 소는 낙성을 하루 앞두고 그만 생을 마쳤고, 스님은 지금의 소나무 자리에 소를 묻었다. 그 곳에서 지금의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났다. 그래서 삼각우송(三角牛松)이라고 한다.

한국영화임에도 진한 사투리 때문에 자막이 필요했던 영화는 화려한 카메라 움직임도 없고, CG와 같은 특수효과도 없다. 절에 가면 들어야 하는 풍경소리처럼 시종 스크린 뒤에서 들려오는 워낭 소리가 배경음악이다.

소가 넘어졌다.
“나이가 많네요?” 소를 보러온 수의사가 말했다.
“한 40 가까이 됐지. 오래 못 살지?”
“1년.”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최씨는 할 수 없이 새 일소를 사온다. 새끼를 밴 암소였다.
“저 늙은 소는 이제 어떻게 할참이에요?”
“계속 키워야지 뭐, 죽을 때까지.”

최씨는 평생 소와 함께 살았다. 소와 함께 농사를 지어 9남매를 키웠고, 자동차 대신 30년을 달구지를 탔다. 소는 가족이었다. 그래서 부인 이씨는 소만 생각하는 남편이 늘 불만이었다.
“소한테는 맨날 꼴 베어다 주고, 죽 끓여 먹이면서 나한테는 잘 해준 거 없어.”

수의사가 다시 왔다.
“할아버지요,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최씨는 누워있는 소의 코에서 코뚜레를 풀고 목에 걸었던 워낭을 풀어낸다. 흙 위에 던져진 코뚜레와 워낭을 바라보던 최씨의 눈이 젖어온다.
“좋은 데 가거라!”
소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주인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린다. 팔순의 상주는 마흔의 소를 흙에 묻고 돌아와 빈 밭에 난 달구지 자국을 바라본다.

영화에 출연한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청량사 신도다. 지금은 연로한 내외 대신 아들과 며느리가 절을 찾는다고 한다. 세 개의 뿔을 가졌던 청량사의 소처럼 최씨의 소도 30년을 한 가족을 위해 살다 갔다. 모두 보살이다.

최씨 내외가 힘겹게 청량사 계단을 오른다. 석탑 앞에서 내외가 부처님께 정성껏 절을 올린다.
“소 죽고 없으니까 생각이 나요?”
“뭐?”
“소가 죽고 나니까 안 됐죠? 생각이 나요?”
“그럼 안 됐지 뭐. 사람이나 짐승이나 뭐…, 죽어서까지 말할 거 뭐 있어.”
최씨의 투박한 손가락 끝에 워낭이 걸려있고, 워낭소리가 울리며 영화는 시작된다.
글ㆍ사진=박재완 기자 | wanihollo@hanmail.net
2010-06-23 오후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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