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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사람들에게 인연이 존재하는 한 악연도 역시 존재하리라. 누구나 선연과 악연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다. 아주 기분 좋은 인연이 있는가 하면, 씁쓸함과 동시에 상처만을 안겨주는 인연 역시 있다.
저자 필립 그랭베르는 정신분석가이자 소설가로서 정신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치료해 온 그 만의 경험을 불교적 색채로 <악연>에 녹여냈다.
불교에서는 인연은 상대적이라고 말한다. 책 속 두 남자 주인공의 악연은 정해진 일련의 파국으로 흘러가지만 이것이 과연 악연인지 선연인지 분간하기 조차 힘든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책은 ‘루’라는 남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줄곧 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사람은 그의 샴쌍둥이와도 같은 친구 ‘만도’다. 두 사람은 늘 모든 것을 함께하는 사이다. 그것을 우정이라 하지만, 만도의 우정이 루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루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만도의 우정 앞에 몇 번의 배신과 시련을 안겨주게 된다.
결국엔 만도의 절교 선언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만도의 연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만도가 정신착란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욱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만도의 그런 정신착란이 자신으로 인해 깊게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 루는 그러한 사실에 큰 후회와 죄책감을 느끼고 그를 배신하지 않고 구해내겠다 다짐한다.
하지만, 결국 루가 택한 방법은 다시금 배신이라는 결말이었다. 이들의 천생연분과도 같았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맺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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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은 2005년 <비밀>로 프랑스 위조상 등을 수상하는 등 프랑스 평단의 호평을 받은 저자 특유의 서스펜스 기법이 녹아 극적인 반전으로 치닫는다.
인연, 인(因)과 연(緣)으로 불교에서는 인은 결과를 산출하는 주된 내재 원인, 연은 이를 발현시키는 간접적 계기라고 말한다. 루는 만도의 자살 이후 일기장을 보며 모든 결과가 자신과 환경이 만들어낸 거대한 인연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만도는 자살 이전 루에게 일기장을 통해 “내가 보는 걸 너도 보게 될거야, 보면 알거야, 네가 썼어도 아마 똑같았으리란 걸. 이 일기는 우리야”는 말을 남긴다.
“나는 마침내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 뒀던 고무줄로 묵인 공책 꾸러미를 펼쳐 보기로 한다. 그 기록들은 나를 충격에 빠뜨린다. 나는 만도를 현실과 맞서게 해주는 사고의 부속물이고 그림자였다.”
욕실 거울을 보며 눈물을 삼키는 루의 독백은 악연 속에 또 다른 인연이 있음을 알리며 여운을 남긴다.
악연│필립 그랭베르 지음│홍은주 옮김│다른세상 펴냄│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