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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10대에 담임선생의 권유로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을 읽은 한 청년은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 법정 스님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져 인연을 시작했다.
할머니 뒷바라지로 어렵게 조선대 법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법정 스님은 그런 그에게 “등록금 고지서를 광주 베토벤 음악 감상실에 맡겨 놓으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스님은 그가 졸업할 때까지 빠짐없이 등록금을 부쳐줬다.
법정 스님은 청년에게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소개하라”고 해서 다른 친구 셋도 졸업 때까지 학비를 도왔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대학교수가 되고 의사가 됐지만 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었다.
특히 법정 스님은 그와 친구들에게 도움 받은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그는 스님 의 다비식을 모신 후에야 현장 스님에게 사연을 밝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목포 초당대 문현철 교수이다. 문 교수는 카톨릭 신자이다. 대학 다닐 때 카톨릭 입문을 준비하던 그는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 날, 문현철 교수는 교통사고를 당해 2주 동안 사경을 헤매고 5개월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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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는 퇴원하자마자 송광사 불일암을 찾았다.
홀쭉해진 그에게 법정 스님이 물었다.
“어디 아팠어?”
문현철 교수가 답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치인 차를 붙잡아 주지 않고 영세 받은 날 교통사고를 나게 할 수 있습니까? 나도 스님처럼 불교를 믿고 싶습니다.”
법정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천주님은 그런 만화 같은 일을 하는 분이 아니다. 이런 아픔을 통해 네가 더욱 성숙해져 더 큰 시련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이어 스님은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 자비나 모두 한보따리 안에 있는 것이니 따로 종교를 바꿀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는 6월 3일 연세대 백양관에서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티베트박물관장 현장 스님은 주제발표 ‘법정 스님이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에서 “법정 스님의 다비식날 불일암에 올랐다가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중년의 남성을 만났다. 그가 문 교수였다”고 말했다.
스님은 티베트불교의 법왕 달라이 라마가 한국 여성 수도자 모임 삼소회원을 만난 자리에서 전한 종교교류를 심화시키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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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님은 “△종교학자 간의 학술세미나를 통한 교류와 만남 △각 종교 수도자들과 영성체험을 나누는 만남 △각 종교 지도자들의 교류와 만남 △이웃종교의 성지를 순례할 기회를 갖는 것 △사회 문제에 종교가 서로 힘과 지혜를 모아 협력하는 것 등 달라이라마가 제안한 다섯 가지 방법을 법정 스님은 너무도 완벽하게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법정 스님은 불교라는 틀에 매이는 것을 거부했고, 수행자라는 상에 매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출가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고 항상 처음 시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선지식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장 스님은 “법정 스님은 자신의 말ㆍ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고 체험하지 않고 깨닫지 않은 사실은 글로 쓰지 않았다”면서 “법정 스님이 남긴 글과 삶과 죽음의 모습, 종교교류의 흔적들이 스님이 가신 후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