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반대 등을 주장하며 소신공양을 한 문수 스님은 “소신공양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라며 평소 소신공양의 의지를 밝혀온 것을 알려졌다.
지보사 주지 원범 스님은 문수 스님에 대해 “수좌로서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평소 일간지를 탐독하며 세간의 일을 걱정했다”고 소회했다.
문수 스님은 소신공양 전날에는 지보사 총무인 견월 스님에게 4대강 사업에 대해 심각하게 말했다. 하루에 필요한 말 몇 마디 외에는 하지 않던 스님이 이날은 좀 더 목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원범 스님은 “5월 말에 겨울에 입는 솜옷 누비를 입고 나갔다”며 “솜옷 누비에 휘발류를 흠뻑 적셔 완전한 다비가 되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5월 31일,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하자 스님의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앙승가대에서 스님을 가르쳤던 유승무 교수는 “이 시대 진정한 운수납자다”라고 말했다. 1998년 중앙승가대 학생회장을 지냈던 문수 스님을 기억하는 유승무 교수는 스님의 소신공양 소식에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문수 스님은 그러고도 남을 분”이라 회고했다.
유 교수는 문수 스님을 ‘수좌형 스님’ ‘야생적인 사람’ ‘원칙론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유 교수는 “거칠고 야생적인 모습을 보였던 스님은 교학보다는 수좌형 스님에 가까웠다. 심지가 깊고 원칙을 중시 여겨, 옳다고 판단됐을 때는 절대 타협하는 일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학생시절 말없이 조용하게 지냈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불서를 읽거나 수행을 했다. 소신공양할 때와 같이 말없이 조용히 행동으로 옮기고,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유승무 교수는 스님과 축구 경기를 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추억했다.
15년 도반인 견월 스님은 “문수 스님은 의리 있고 욕심 없이 공부를 해왔다. 정이 많았던 스님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할 정도의 대단한 스님”고 기억했다. 견월 스님은 “1998년 조계종 종단 사태를 보고 스님은 정화개혁회의 진영에서 활동하며 종단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때 스님은 청정 승가를 발원하며 왼쪽 손가락 4개를 연비했다”며 “이런 스님은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