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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는 1600여 년의 역사를 참선으로 수행하는 선불교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불교의 주류로 받들어지던 간화선이 위기에 놓였다.
권위를 가졌던 간화선이 여러 수행법 중 하나로 취급되고 정통 불교수행법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불교에 초기불교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시작됐다. 1990년대 간화선 수행에 한계를 느꼈던 다수 출가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위해 미얀마 등 남방으로 떠났고, 현재 그들 중 다수가 국내에 들어와 위빠사나와 남방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빨리어에서 그대로 번역된 초기경전서들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으며,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극단적인 예는 강원의 커리큘럼을 선종 관련 과목 대신 남방불교의 니까야를 중심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초기불교주의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저자 방경일은 <초기불교VS선불교>에서 “붓다의 친설이라는 니까야의 중심 교리들에는 자체 모순과 상호충돌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말 처럼 초기불교주의자들이 니까야 중심의 개정을 주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초기불교, 남방불교, 위빠사나가 붓다의 원음이고 붓다의 실수행법이라는 믿음이 전제돼 있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 “현존하는 니까야가 붓다의 원음이고, 남방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 선불교는 붓다의 원음에서 벗어난 이단아인가?”와 같은 의문들 말이다.
<초기불교VS선불교>는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품게 되는 의문들을 저자의 상상력과 논리로 나름의 답변을 제시해나가고 있다.
책은 전체 8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첫 주제 ‘붓다는 가공의 인물인가?’ 편은 붓다가 신화적 가공의 인물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반박을 보인다. 두 번째 주제는 ‘니까야는 과연 친설인가?’로 저자는 현존 니까야가 붓다의 친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존 니까야는 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붓다의 재세와 1300년의 차이가 나며, 이 사이 편집자들에 의한 실수 혹은 고의에 의해 수정되거나 보완ㆍ누락ㆍ삭제 등의 일들이 일어났다고 본다”고 말한다. 즉 현존 니까야의 내용을 붓다의 원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한국 초기불교주의자들의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이 밖에도 책에서는 △니까야에 근거한 교리들은 오류가 없는가?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 논쟁 △중국인들은 왜 초기불교를 버렸을까? △선종은 불교와는 다른 종교인가? △간화선만이 정통인가?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 방경일은 “역사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불교는 고정되거나 교조적이지 않다. 따라서 초기불교도 대승불교도, 위빠사나도 간화선도 어느 것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고 말하며 “시대ㆍ환경ㆍ근기ㆍ정서 등이 변하면 그에 따른 수행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지금이 그 전환의 시기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기”라고 강조한다.
<초기불교VS선불교>는 현재 한국의 초기불교주의자들의 주장을 정면 반박해 때론 도발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나 본질적으로는 현시점의 한국불교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제기의 측면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