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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명 스님(寂明, 72). 한국의 수좌로 손꼽히는 분이다. 하지만 스님은 좀처럼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지 않았다. 출가한지 50년 된 구참수좌다. 올해 하안거 결제를 맞아 특별히 인터뷰에 응해준 스님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요함이 있었다. 평온했다. 그리고 맑고 밝았다. 스님의 법명 그대로 고요함과 맑음, 밝음이 느껴졌다.
하안거 결제를 하루 앞두고 5월 27일 문경 봉암사에서 진행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스님의 첫 마디는 “카메라가 터져서 신경이 쓰인다.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다”는 겸손과 수줍음이었다. 엄하고 냉정하게 사진 촬영을 거부하거나 인터뷰를 빨리 끝내려는 서두름이 아니라 스스로 ‘익숙하지 않다’는 말로 대중들에게 이해를 당부했다.
스님은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적명 스님은 “가난한 절이었다. 고우 스님이 20여 년 전 봉암사가 종립선원으로 지정되면서 도량의 사격도 지금의 모습을 갖춰졌다”며 “외형적인 것은 끝났다. 이제는 내면을 갖추기 위한 시간이다. 과거 봉암사는 정진을 위해 찾아오던 공간이었다. 이제 정진을 위해 준비가 됐다. 대중들과도 정진하고 싶은 곳, 가장 정진 잘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지켜보라”고 말했다.
2008년 대중의 요청으로 은해사 기기암에서 봉암사(주지 원타)로 온 적명 스님은 “10년 안에 열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 만큼 도인을 배출하겠다”며 스님의 서원을 밝혔다.
50년간 선방에서 꼿꼿이 산철 결제를 이어온 스님은 방문객을 위한 첫 주제가 ‘수행’ 이었다.
“선방에서 수행이라는 것을 정진이라고 합니다. 정진은 심성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정진은 ‘선정과 지혜’ 로 나누어 볼 수 있지요.”
스님은 쉽게 접근했다. 적명 스님은 “본래마음은 체(體)이고 지혜는 용(用)이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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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닦지 아니하면 혜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혜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정을 닦을 수 없습니다. 호수에 일어난 파랑을 가라앉으면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되듯, 물 자체는 고요한 모습입니다. 물이 움직일 때 나타나지 않았던 물 자체의 특성이 맑음과 빛으로 드러납니다. 맑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보여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정진을 하면 요동쳤던 마음에 고요가 찾아들고, 그때야 비로소 본질적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화두는 본래 심성에 갖추어져 있는 정과 혜를 볼 수 있는 것이지요. 화두라는 것은 깨달은 이가 명경지수의 상태에서 보고,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스님은 일반인들에게 ‘쉬운 화두’를 던졌다. 쉬운 화두라는 것이 중생에게 있으려만.
“북두(北두)를 면남관(面南觀)하라”
면남관하라는 것은 얼굴을 남쪽으로 하고, 북두는 북쪽하늘을 보라는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깨달은 이에게는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기가 막힌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느끼는 데로 말하는 것이다.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몰입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화두 참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끊어지면 대상이 절로 끊겨진다. 화두를 제대로 들기만 해도 상대성을 초월하는 지름길이다.”
화두에 대한 설명이었다.
삼고초려 끝에 수좌로 모시긴 했지만 스님은 끝내 조실, 방장 등의 직함을 ‘법이 없다’며 사양하셨다. 법이란 무엇인가?
적명 스님은 “법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면 사양할 필요가 없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스님은 “지금 현실에서 옛날 부처님이나 옛 대단했던 위대한 선사들과 똑같은 방장이 아니다. 현실을 알고 있다. 문중, 권속 등의 혼란에서 자격이 없어도 방장이나 조실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스님은 “조실 소임이 아니라도 지낼 수 있다면 굳이 조실이라는 이름을 갖을 이유가 없다”며 향곡 스님, 전강 스님 등 선대 선지식인들도 자신들의 직함에 얽메이지 않았던 사례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스님은 “유수한 선지식이 조실 이름을 안 떼고 지내는데, 조실로서 권능을 행사하지 못하는 바 있는가? 이름은 상관이 없다. 수좌로도 조실 이상의 할 수 있다”며 “지금 수좌로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인을 위한 간단한 수행법으로는 달마 스님의 이입사행론 중 ‘보원행(報怨行)’을 추천했다.
“내가 원해서 일으켜서 이루어진 결과가 지금 현재를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감수하세요. 고맙게 받아들여서 마음에 지난을 일으키지 마세요. 좋다좋다, 나의 삶이라면 받아드리겠다는 자세로 사세요. 원수를 몸으로 껴안고 도를 향해 나아십시오. 내가 원했던 것이니 흔쾌히 받아들여 두려움, 원망, 회피의 약한 마음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스님은 인과법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자세를 요구했다.
“부처님의 인과법에 답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당당하게 현실을 받아드리면 끝까지 매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자체로 인과법은 부처님의 길을 가게 되는 수행법이고, 부처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과법에 대해서 깊이 믿는 마음이 들면 그 자체가 해탈이다. 일상에서 불교적인 삶을 추구한다면 인과법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십시오.”
적명 스님은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초계(草繫)비구 설화를 들어 불교적 입장을 밝혔다.
“도적에게 물건을 다 빼앗기고 풀에 묶인(草繫) 비구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행여나 풀줄기들이 끊어져 풀들이 상할까 두려워 풀을 풀지 않고 모든 고통을 억지로 참아냈습니다. 불교의 자비사상과 생명존중사상은 이와 같은데 어떤 목적에 의한 살생과 개발은 잘못입니다.”
스님은 또 “개발이 필요한 곳에는 개발을 해야겟지만 온 산지천하를 청계천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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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들을 위한 말씀을 부탁했다. 스님은 겸손하게 “고원한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전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수행의 길을 가다가 깨달음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삶 자체가 행복한 기쁨의 삶이다. 이 길에 대해서 고달파하거나 힘든 길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후학들이 수행의 참맛을 느끼길 부탁했다.
“수행의 참뜻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순일의 상태를 체험해야 합니다. 일체 번뇌를 벗어나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기 마음의 기본 방향을 잡아 정진을 통해 순일을 체험하세요. 그러면 수행이 고행하는 것이 겉모습에 지나지 않음을 알 것입니다.”
이어 스님은 “부처님은 고행하지 않았다. 진정한 선정에 들었을 때는 고행이라 할 수 없다. 고통스러웠다면 진정한 삼매가 아니다. 선정은 ‘희락(喜樂:기쁨과 즐거움)’이라고 했다. 충만한 행복감을 체험한 이들은 수행의 길을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적명 스님은 희열의 상태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철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었다.
“순수 희열은 변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성을 갖습니다. 희열의 상태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인데, 이때 이것이 오롯한 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열반경>에는 열반의 네특성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문턱에 이르게 됐는데 희열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요.”
스님은 마지막으로 재가자들의 생활수행 접근법을 간략히 설명했다.
“처음에는 매일 10분씩 반복하세요. 화두참선이면 좋겠지만 염불, 절, 주력 무슨 수행을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늘려가세요.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조금씩 하다보면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매일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순일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빗물이 떨어져 바위에 구멍이 뚫리는 것과 같이 말이죠. 이런 간절한 마음은 곧 순일한 마음이고 순수한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간절함, 진실함이 나거나 말거나, 마음을 갖고 싶거나 말거나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스님은 조계종 승가사유재산 종단 출연령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수행자의 인품과 자질을 믿지 않고 강제적으로 반환한다는 것은 ‘인격모독’이라고 일축했다.
적명 스님은 “부처님은 걸식을 기본으로 했으며 근본 계율에서 승려의 사유재산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유재산이 있다는 것이 옳은 문제는 아니지만 현대사회에는 삶의 형태가 바뀌면서 스님들도 돈없이는 살 수 없게 됐다. 부처님 계율대로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스님의 사유재산에 대한 현실부분을 인정했다.
하지만 스님은 “스님들의 재산은 불연에 의한 것으로 알아서 불교계의 발전을 위해서 자율적으로 사용될 부분을 의무적으로 유서를 쓰고, 사유재산을 출연하는 것은 인격모독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