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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사명암. 간밤에 꽃비가 내렸다. 비의 흔적은 문장 밑을 지나가는 밑줄처럼 대지 위에 남아있었다. 어둠 속을 흐르던 비의 궤적은 꽃잎 끝에 붙은 괄호 속으로 사라졌고, 문장 끝으로 다가온 아침 햇살이 꽃잎마다 마침표를 붙이고 있었다. 간밤에 꽃비가 내렸다.
아침은 꽃이 지는 것을 그렇게 말하고 나서 삼매에 들었고, 꽃이 살던 곳의 빛깔은 봄바람에 후드득 후드득 날아가고 있었다. 한 평 마당에 꽃비가 내렸을 뿐인데 계절은 목전에 와있고, 법당에 앉은 손바닥만한 마음은 언제 열릴지 모르는 부처님의 입처럼 무겁기만 했다. 아침 목탁도 울었을 텐데 간밤에 꽃비 내린 뜻은 아직 아무도 모르고, 법당 가는 스님 뒤로 산새만 지저귀며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