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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는 사흘만 했고, 남기고갈 말은 오래전에 써두었다. 남은 것은 빈 법구뿐.
법구는 관을 쓰지 않았다. 꽃상여도 없었다. 쓰던 평상 위에, 가사 한 벌 덮고 다비하러 간다. 만장도 없이 간다. 고갯길은 슬펐고 정근 소리는 무겁게 돌아왔다.
슬픔에 젖은 불이 법구를 태웠다.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닌 빈 몸이건만 한 때의 인연이 그 이름을 끝내 잊지 못했다. 수천의 눈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길을 바라보고, 수천의 귀는 마지막 설법을 기다렸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 생사가 끊어진 자리에 설법은 따로 없었다. 흰 연기만이 피어올랐다.
달빛 속에서 법구는 식어갔고, 스님의 흔적은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스님이 사랑했던 것들이 남아 있었다. 사랑했던 책들, 사랑했던 인연들, 사랑했던 부처님이 남아있었다. 스님을 사랑했던 이들이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