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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각이 부모를 잃고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살다가 7년이 지나 그동안의 품삯을 받고 나왔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도 못간 처지가 처량해 총각은 품삯을 들고 장님에게 점을 치러 갔다. 총각은 모든 품삯을 복채로 냈는데 점쟁이는 고작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글자를 써주며 “밤낮으로 외우시오!”라고 말했다.
총각은 분통이 터져 그만 미쳐버리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하고 염불만 한다. 하루는 바위에서 외우다 잠이 들었는데 건장한 남자가 오더니 “전생에 탐심이 많아 뱀의 몸을 받아 수백 년을 살았다. 도랑 바닥에 있는 돌은 모두 금덩이인데 나는 뱀이 되고서도 그것이 아까워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가 ‘대방광불화엄경’을 외는 소리를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천상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총각은 잠에서 깨어나 그 냇가로 갔더니 금을 발견했고, 이후 정신도 돌아오고 신세가 달라져서 행복하게 살았다.
총각은 염불로 신세가 달라졌다. 혹자는 이러한 염불수행을 하근기의 수행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보경 스님은 “모든 경전의 제목을 외우는 것으로도 훌륭한 기도가 된다. 경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진리에 눈을 뜬 성현들의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는 동일한 듯하고 어떤 면에서는 이질적이다. 스님은 “종교나 사상이 생겨난 지리ㆍ문화적 배경에 하나의 해답이 있고 문화적 배경의 핵심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서로 이것을 이해하면 더불어 사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불교를 포함한 대다수의 종교의 시작은 그 궁극의 경지가 ‘깨달음’또는 ‘구원’이라 할지라도 ‘먹고 사는 문제’, 즉 자기 위안과 공덕의 성취를 바라는 경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계기로 기독교에서는 ‘주기도문’을 외우고 인도에서는 ‘만트라’ 주문을 반복해 외우기도 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관세음보살’‘나무아미타불’같은 불보살들의 명호부터 <신묘장구대다라니><능엄신주>의 <다라니>, <대방광불화엄경><나무묘법연화경>같은 경전의 제목을 반복해 외우는 기도 방식들이 애용된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이후 가장 먼저 설한 법인 <화엄경-약찬게>기도가 많은 사랑을 받고 암송되고 있다.
<화엄경>은 모두 80권 39품 10만 게송 240만자로 그 양이 방대하다. 이를 용수보살이 770자 110구로 요약 정리한 게송이 <약찬게>다.
<약찬게>는 일정한 운율이 있어 대다수의 불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암송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보경 스님은 “신도들이 <약찬게>를 무작정 독송하기 보다는 한 음절 한 음절에 담긴 뜻을 알고 기도하는 것이 신행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강의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스님은 매달 법회 때 마다 <약찬게>를 알기 쉽게 다양한 예화를 들어 강의를 했고 이를 <기도하는 즐거움>으로 엮어냈다.
간결하게 조직한 시문(時文)인 <약찬게>는 그 내용이 매우 조직적이고 신행적이어서 한번 독송하면 화엄경 1편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은 “아무리 많은 경전과 다라니를 외울지라도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여전히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나그네의 고달픔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며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헌신과 삶의 경건한 자세를 갖출 때만이 비로소 행복과 자유의 궁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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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즐거움│보경 지음│불교시대사 펴냄│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