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피국수는 양념장 안 넣고 먹지요?”
“그렇지요, 커피국수는 정말 간단합니다. 사발에 커피를 담고 국수 올리고 오이 얹으면 끝이지요. 오이는 최대한 곱게 채 쳐요.”
“스님, 이 꽃은 어떻게 꽂으신 거예요? 멋스러워요”
“꽃시장 갔다가 바닥에 이파리 하나 떨어져 있기에 주워 접시에 물 붓고 그냥 얹은 거예요.”
리빙 전문기자인 이나래 기자가 28개월 동안 맛과 멋을 아는 정위 스님의 뒤를 쫓으며 배운 것을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으로 펴냈다.
관악산 자락 아담하고 현대적인 사찰 길상사에 기거해 온 정위 스님. 주변인들은 스님의 격 높은 솜씨에 감탄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지 않던 정위 스님이 어느 날 이나래 기자를 만나 매화비빔밥 한 사발 대접했다가 미감을 들키고 말았다.
<레몬트리> <여성중앙>의 리빙 전문 담당인 이나래 기자는 “푸드스타일리스트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멋지게 차려낸 그림 같은 광경은 숱하게 봐왔고 때로는 그 센스를 우리 집에 응용해 왔다”면서 “정위 스님의 살림은 꾸밈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아끼고 배려하며 생활에 충실한 가운데 멋이 묻어 난다”고 말했다.
저자가 말하는 센스, 아낌과 배려는 스님이 만들어내는 음식과 살림살이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길상사의 히트 메뉴인 ‘채소떡국’은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스님은 고기 국물로 떡국을 할 수 없어 마땅한 재료를 찾다가 미나리, 유부, 버섯을 넣는 등 다년 연구 끝에 고기국물로 맛을 낸 떡국보다 맛도, 몸에도 좋은 떡국을 개발했다.
| ||||
‘매화꽃 비빔밥’도 그 맛이 일품. 스님이 매화꽃을 흩뿌려 비벼준 비빔밥의 톡톡 터지는 매화 향기에 흠뻑 취해 저자는 밥을 남기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금새 잊었다고.
정위 스님은 생긴 대로 살려 꽂는 자연주의 꽃꽂이를 지향한다. 꽃 시장에 꽃 사러 갔다가 발에 채여 주워 오기도 하고, 그냥 두면 꺾어질 가지, 바람에 떨어진 꽃을 앞마당에서 주워다가 대강 어울릴 만한 자리에 찾아 두는 식이다.
최근의 트렌드는 에코(ECO)다. 진심을 잃고 보여주기 위한 에코가 판을 치는 요즘, 저자는 스님의 일상을 구경하면서 몸에 밴 친환경 마인드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 ||||
정위 스님은 물건하나 허투루 써 버리는 일이 없다. 스님의 물건들은 평균 15년은 된 것들이다. 안경은 15년, 냄비는 25년, 가방은 8년, 신발은 10년 됐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오래 쓴 물건들이 모두 멀끔하다. 이런 몸에 배인 습관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묻는 질문에 스님은 “생명이 있건 없건 저에게 온 것에 인격을 부여한다”고 답했다. 그동안 스님이 이 빠진 꽃병도, 깨진 홈을 살려 나뭇가지를 꽂고, 낡은 십자수 옷보는 잘라서 액자를 만드는 등 정성을 들였던 것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음식도 마찬가지다. 스님은 찬으로 올렸다 남은 김치들은 모아뒀다가 볶아 먹거나 찌개를 끓인다. 마른 표고로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도 보통은 기둥을 떼어 내버리는데 스님은 기둥만 모았다가 장아찌를 만들었다. 살림의 지혜이자 환경을 대접하는 정성이다.
스님은 “길상사를 지을 때 우연히 책을 보다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구절을 가슴깊이 새겼다”고 말했다.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에는 스님이 절을 꾸미며 삼은 원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정위·이나래 지음|중앙m&b 펴냄|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