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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머리맡 책 신문배달 꼬마에게 전달
길상사, 법정 스님 기념관 설립 예정
법정 스님의 유언 속 신문배달 소년인 강 씨(왼쪽)이 덕진 스님에게 책을 건네받고 있다 가운데는 법정 스님 맏상좌 덕조 스님.

법정 스님의 유언과 1972년 출간된 스님의 첫 책 <영혼의 모음>에서 밝힌 뜻에 따라 스님의 머리맡에 있던 책이 ‘신문을 전달하던 꼬마’에게 전달됐다.

상좌 덕진 스님은 법정 스님의 3재가 봉행된 3월 31일 서울 길상사 행지실(行持室)에서 법정 스님이 즐겨 읽던 책 6권을 ‘신문을 전해주던 꼬마’에게 전달했다.

책을 전달 받은 주인공은 1970년대 초 법정 스님이 봉은사에서 머물 당시, 사찰에서 어머니와 살았던 강모(49, 봉은사 신도) 씨다. 강 씨는 법정 스님에게 누를 끼칠 것을 염려해 이름과 얼굴의 비공개를 요구했다.

강 씨는 “스님의 유언에 ‘어린 소년을 찾아 책을 전달하라’는 말을 듣고 왜 찾아 전달하라고 하셨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시던 스님께서 심부름했던 소년에게 진 빚을 다 갚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 씨는 “이 책들은 사부대중의 것이지 개인 것이 될 수 없다. 스님의 뜻에 따른다면 소유할 수 없다. 필요한 곳에 조건 없이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강 씨는 스님에 대한 추억을 풀어놨다.

“법정 스님은 당당하고 강직하며 고고한 분이셨습니다. 하루 3끼 발우공양을 한 스님은 행전(行纏)을 차지 않고 공양을 했을 때는 바로 참회를 하셨고, 한 여름에도 승복을 팔목 위로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스님의 위엄은 스님이 법당에 들어오시면 순간 고요해 질 정도였습니다. 스님의 엄격함이 봉은사의 기강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강 씨는 어린 시절 만난 스님에 대한 기억을 또렷하게 하고 있었다. 강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3여 년을 스님에게 신문을 전달했다.

“신문이나 우편물이 종무소로 오면 다래헌의 큰 문을 열고 들어가 스님에게 신문을 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스님이 머무시던 다래헌에 들어가는 것은 저만의 특권이었습니다. 개구쟁이였던 저는 방청소나 책 정리를 하거나 스님의 팔다리도 주물러 드리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눈이 오면 눈을 치우지 못하게 하고 그대로 놔두시고 녹아서 냄새가 나면 치우시곤 했습니다.”

강 씨는 스님의 강직했던 품성과 계율을 철저히 지켰던 모습,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 아버지와 같은 따뜻함을 추억했다. 법정 스님은 강 씨에게 크레용을 선물하기도 했다.

“멋모르고 장난치던 저를 매우 귀여워하셨습니다. 한번은 24색 크레용과 도화지를 선물하셨습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었던 소중한 것이었지만 누가 가져가버려 써보지는 못했습니다.”

친구들이 8~12색 크레용을 쓰던 시절 법정 스님에게 24색 크레용을 받은 것은 장년이 된 지금도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강 씨는 어느 날 홀연히 봉은사를 떠난 스님을 입적 전까지 만나지 못했다. 입적 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야 스님을 찾아뵌 것에 강씨는 못내 죄송스러워 했다.

강씨는 봉은사를 재적사찰로 둔 독실한 불자로 현재 남양주 봉인사에서 기도 수행 중이다.

법정 스님의 머리맡에 있던 책 6권.


이날 덕진 스님이 강씨에게 전달한 법정 스님의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강승영 옮김, 이레), <선학의 황금시대>(오경웅 지음, 삼일당), 르네 젤러의 <생텍쥐페리의 위대한 모색> (안응렬 역, 홍성사), <선시> (석지현 편역), <벽암록>(안동림 역주, 현암사),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등 6권이다.

흰 종이로 반듯하게 포장된 <예언자>에는 손 떼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종이 위에는 ‘칼릴 지브란 予言者(예언자)’라는 스님의 정갈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선학의 황금시대> 내부에는 스님이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낙관과 <선시>에는 편역자인 석지현 스님이 법정 스님에게 건 낸 서명이 있었다.

덕진 스님은 “법정 스님은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가장 좋아하셨다”고 설명했다.

법정 스님은 입적 2주 전 ‘덕진은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 주면 고맙겠다’고 상좌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1972년 출간된 스님의 첫 책 <영혼의 모음>에는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을 즐겨있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법정 스님의 유품으로는 책, 가사, 장삼, 펜, 친필원고, 미니CD플레이어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덕진 스님은 “책을 비롯한 나머지 유품은 길상사 내 기념관을 설립해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봉사 시민단체인 맑고향기롭게 관계자는 “법정 스님의 저서를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올해 말까지만 유통하고 절판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함석헌기념사업회는 법정스님의 미발표 원고 ‘악에 관한 것’ 전문을 3ㆍ4월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글=이상언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un82@buddhapia.com
2010-03-31 오후 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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