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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가 없을 것 같은 석탑도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옥개석 귀퉁이는 부서져 흙으로 돌아갔고, 그 옛날 석공의 솜씨는 무색해졌다. 이 세상에 함께 왔던 꽃들이 수없이 다시 피었고, 석탑을 바라보던 법당의 빛깔도 많이 변했다. 석탑이 바라보던 하늘이 또 계절을 바꾸고 있었다.
절마다 법당 앞에 서있는 석탑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석탑들은 어느 시대의 것인지도 모르는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 그 언어는 불빛에만 드러나는 보물섬지도의 숨은 글씨처럼 기다리고 있는 시선에게 서서히 마음을 드러낸다. 지금의 우리가 살지 않았던 그 시대의 언어로 떠듬떠듬 말을 걸어온다. 언젠가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