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명진 스님의 일요법회 발언 전문이다.
1주가 굉장히 길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에는 솔직해지자. 솔직하게 모든 일을 신도님들에게 말씀 드리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세에 해인사 출가해 1986년 해인사 승가대회로 사회문제 관심 갖게 됐다. 그러던 중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인연이 닿았다.
종회를 그만 두고 다시 선방으로 갔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봉은사에 오게 됐다. 1994년 종단 개혁당시에는 봉암사 선방에 있다 올라왔다. 부처님 가르침이 이 땅에 널리 퍼지려면 종단의 여러 문제들이 먼저 해결되고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94년 종단 개혁 당시 가사를 불전에 바치면서 성공하지 못하면 3보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이후 형식적으로나마 개혁이 성공해 지금의 종헌 종법 체제가 성립됐다.
그 이후 인연이 닿아 봉은사 주지를 하게 됐다.
봉은사 주지를 지관 스님으로부터 임명 받을 당시 거절을 3번 했다. 지관 스님께서 “다들 명진 스님이 아니면 봉은사 들어가기 쉽지 않다고 하니 들어달라”고 하셔서 “전례같이 큰절 주지가 관례적으로 드리는 용채는 못 드립니다. 그 대신 주지 잘해서 그런 말 듣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하고 주지직에 임했다.
1994년 개혁의 본 정신을 봉은사에서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정말 우리 마음속에 부처님 법대로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찰을 만든다면 우리 종단이 맑아지고 신심나는 불교로 바뀌지 않겠나 했다.
그래서 1000일 기도에도 들어갔다. 처음에 1000일기도 들어갈 때 신도님들이 믿지를 않더라. 300일 째가 되니 ‘정말 기도를 하는 것인가’하고 500일 째 되며 신도님들께 3배를 올리니 그제서야 믿어줬다.
만약에 혼자 기도를 했다면 못했을 것이다. 여러 신도님들이 저에게 호법 신장으로 1000일 기도가 가능하게 했다. 그때 ‘아! 중노릇은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구나’ 느꼈다. 그렇게 봉은사 중노릇을 신도님들 공덕으로 회향코자 했다.
봉은사가 재정을 공개할 때도 준비가 안돼 있었다. 하지만 재정을 공개하면 신도님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마음에 추진했다. 봉은사가 바뀌면 종단이 바뀐다. 모두가 열심히 한번 해보자는 바람도 있었다.
신도님들에게 재정 살림을 맡기니 사찰 살림이 투명하게 잘 돌아갔다. 그러던 와중에 종단이 직영해야겠다고 나왔다.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지금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은 나와는 남다른 사이다.
1992년도 봉암사에서 올라왔을 때 사무실에서 같이 자며 종단 미래를 논한 적도 있었다. 그 뒤 종단의 이념에 따라 같은 입장으로 때론 반대 입장으로 오래토록 함께했다.
지난 총무원장 선거 당시에는 자승 스님이 찾아와 총무원장 출마를 도와달라고 했다. 스님에게 “전에 나보고 하랬더니 출마하시나”고 하니 자승 스님이 “아 스님은 종정하셔야죠”라는 농도 주고 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반대하는 스님들과 합의하는데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봉은사 부주지 진화 스님이 자승 스님 선거대책운동본부에 들어가 선거 당시 열심히 활동했다.
그리고 자승 스님은 모든 사부대중의 기대와 희망 속에 추대되다시피 당선됐다.
자승 스님은 당선 직후 취임식에서 소통과 화합이란 재명제로 종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때 비록 젊으시지만 화합적 분위기에서 희망이 있겠다고 느겼다.
자승 스님은 당시에 스님이 만약 저를 반대하시더라도 봉은사를 훌륭히해 많은 신도들이 신심을 내는 것은 본받아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스님이 봉은사 주지를 더하시는 것을 생각중이다고 하셨다.
은정장학회의 시작에는 제가 쓰는 방 앞방을 내주기도 했다. 당시 그 방에서 선거운동했고, 원장이 되셨다.
#“왜 직영으로 할려고 할까는 의문이 든다”
봉은사 문제를 종단의 이런 사유로 직영해야겠다. 이 말이 사전에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날 종무회의에서 직영 안건을 상정하는 날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기쁜 소식 전하겠습니다”라며 “봉은사가 직영사찰로 바뀌었습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있었는데 진화 스님이 얼굴이 하얗게 되서는 “종무회의에서 직영사찰로 바꾸기로 결의했습니다”며 설명을 했다.
그 날 오후 3시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법인 등록을 위한 회의가 있어 조금 일찍 총무원을 찾았다. 회의 전후 “당해사찰 주지와 한마디 상의 없이 이러는 것이 무슨 뜻이냐”는 뜻을 전했다.
“봉은사 직영문제를 누구와 어떤 사람들과 소통했는지 다시 묻고 싶다”
총무원에서 그 어느 누구도 직영문제를 ‘내가 거론했다’는 얘기가 없다. 진화 스님이 종회의원들에게 봉은사 사부대중의 입장을 전달해 총무분과위원회에서 5:4로 안건 상정을 부결 시켰다.
그럼에도 직영지정 과정이 급작스럽다 등 의혹이 가시지 않던 차에 3월 9일 4시 자승 스님이 한번 만나자고 했다.
자승 스님이 커피숍에서 기다리겠다고 해 “아니다 은정장학회 사무실로 찾아 뵙겠다”고 해서 만났다.
내가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하니 자승 스님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고 했다.
“왜 하는 것입니까. 영담 스님 작품입니까. 원담 스님 작품입니까”고 물으니 자승 스님은 “제가 참회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어디서 압력받은거 아닙니까?”하니 “절대 그런 것 없습니다”라고 해 “성명 세자와 주거를 밝혀달라. 귀신이 씌인것입니까?”고 하니 자승 스님이 “귀신이 그런 것 같습니다”고 답했다.
그런데 11월 5일 총무원장 취임 후에 11월 20일 경 김OO 거사가 찾아와 “스님 몇 일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하고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같이 자리했다. 11월 11일 오전 11시 30분 프라자 호텔인데 그 자리에서 스님 얘기가 나왔습니다”고 전했다.
그 거사가 “안상수 의원이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나눠서야 돼겠냐’고 했다. 고흥길 문광위 위원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거사는 “''자승 스님은 임기가 보장돼 어떻게 할 수 없다. 인제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쪽에서 “용산 참사 1억 갖다 준 것을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자 자승 스님이 “봉은사 돈은 재정이 공개돼 함부로 할 수 없다.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준 돈을 머라 할 수는 없지 않냐”고 답했다.
#“그것은 밀통과 야합이다”
봉은사 직영 추진은 이런 연관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원장 스님을 만나 할 말이 어지간히 없나보다. 봉은사를 직영하겠다는 것은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가? 바로 봉은사 신도들을 비롯한 봉은사 사부대중, 종도들과 소통해야 한다. 안상수 의원과 소통해야 하나. 그것은 ‘밀통’이다.
이것이 화합인가? 종단에 이렇게 분란이 일게된 것은 바로 야합 때문이다. 소통과 화합을 주장하는데 밀통과 야합을 통해 봉은사 분란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해명해야 한다.
만약 제가 한 말이 근거없는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정권과 압력을 받은 사람이 이를 부인하고 언급안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는 진실은 언제든지 이긴다고 판단하고 이 말을 전한다.
#“안상수 의원은 국회의원 사퇴하라”
안상수 의원에게도 이 자리 빌어 묻고 싶은게 있다. 세종시 문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운데 집권여당의 대표가 한 종교와 종단의 대표를 불러 사찰 주지를 바꿔야 한다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 이는 시정잡배들도 하지 않는 행동이다.
만약에 내 말이 근거 없는 허황된 말이라면 내 손으로, 그리고 내 발로 봉은사를 걸어 나가겠다. 또 직접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 승적부에서 내 이름을 지울 것이다.
하지만 안상수 의원이 자승 스님과 야합을 했고, 또 밀통했다면 원내대표 직을 사퇴하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 11월 30일 총무원장 당선 이후 자승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선 축하자리였다.
나는 자승 스님께 “총무원장 당선 축하를 해야 하는데 축하금은 줄 수 없다. 대신 분담금을 1억을 더 보내겠다”고 말했다.
평상시 중앙종무기관에 예산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했다. 포교와 재정의 기반이 너무 적다.분담금 1억원을 더 내겠다는 것은 납세자가 세금을 더 내겠다는 것과 같다.
재임이 걸려있으니 돈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주지를 살아 봉은사 재정이 넉넉해졌으니 종단발전을 위해 분담금을 더 내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 자리에는 불광사 회주인 지홍 스님도 같이 있었다. 자승 스님에게 10ㆍ27법난 분담금 요청액인 1000억 중에 봉은사 주차장 등 가람정비사업에 쓰자고 제안했다.
자승 스님은 조계사 성역화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차선으로 봉은사를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자승 스님에게 총무원장이 되시니 청와대 등에서 압박이 안들어오시냐고 물었다.
이 자리에서 자승 스님이 미리 들었던 얘기를 확인해줬다.
안상수 의원은 좌파교육 때문에 성폭행범 김길태 등이 나왔다는 얘기 등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김길태는 전두환 노태우 때 교육을 받았다. 마음에 안들면 무조건 좌파인가?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다. 정주영 회장 좌파인가?
#“지긋지긋한 좌우논쟁은 떨쳐버려야 한다.”
종교인 입장에서 남과 북이 평화로운 가운데 서로 오가고, 서로 오해라고 오판해 전쟁이 나서는 안된다는 입장에서 조계종 대표로 북한을 오갔다. 승질나쁜 동생인 북한을 살살 달래서 못된 짓 못하게 하고자 함이다. 북쪽의 경우가 이치에 안 맞고 억지소리 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다 굶겨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것이 좌파인가?
아무 곳에나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으면 좌파 딱지를 붙이는 안상수 의원. 안상수 의원은 자기 부인이 밥을 못해도 좌파 부인, 자기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좌파 자식, 지나가는 개가 짖어도 좌파 개라고 할 사람이다.
민족을 분열로 몰아가는 안상수 의원은 한국정치에서 손을 떼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집권여당의 하수인인가?”
직영문제도 이런 분위기 속에 여론의 반발을 무릎 쓰고 진행됐다. 현 원장은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의 하수인 역할을 한 것 밖에 볼 수 없다.
직영을 하면 어떻게 하겠다. 왜하겠다.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프로그램, 사전에도 준비가 없었고, 사후에도 준비가 없었다. 총무원에서는 법정 스님의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싫어서 말없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정 스님 입적을 그렇게 애석하게 여기면 3월 12일 종회에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결정할 때 안건이 밑바닥에 있었는데 법정 스님 입적으로 당겨서 올린 이유를 묻고 싶다.
나는 봉은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이 투명하게 변하고, 여법한 도량으로 신도들이 신심나게 하는 것이 법정 스님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법정 스님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추모분위기 속에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이 틈을 이용해 봉은사를 직영한 것을 마음 속으로도 용서 할 수 가 없다.
#“종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종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현재 누구 하나 왜 그런지 모른다.
어제 종회의장 스님이 찾아와 시끄럽지 않고 원만하게 했으면 좋겠다. 직영사찰로 받아들이고 주지를 연임 받는 등으로 협의해보라고 하셨다. 주지 재임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
1988년도 같이 폭력적인 사태가 봉은사에서 다시 일어나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당시 폭력사태에 개입한 자들이 자승 스님 선거캠프 쪽에 있었다. 당시 나는“폭력배 1000명 고용해 들어가고 했는데 1명도 안 쓴 명진이가 왜 거기 있는거야”는 말도 나왔다.
직영사찰 지정 원안에 도선사와 봉은사가 같이 올라갔다. 다시 도선사는 빠지고 봉은사 직영은 포교벨트를 이어서 종단 발전을 한다고 기획실장 원담 스님이 공개 발언했다.
처음에는 분담금 공백을 메우겠다 그 다음에는 포교벨트를 하겠다고 입장이 바뀌었다.
종회도 어떤 대안도 없이 하자는 총무원장의 의견을 받아 목탁을 친 것도 문제가 있다. 만약 봉은사를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봉은사 신도들과 소통을 하고 화합을 하고 원만한 방법으로 한다면 괜찮다. 하지만 정당한 명분없이 강행한다면 제 발로 총무원에 가서 승적부 지울 것이다. 40년 중노릇 걸고 막겠다.
주지직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지난주 일요법회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들어오면 목숨걸고 막겠다’고 햇는데 불교계 언론에서는 목숨걸고, 주지직 걸고 막겠다만 도배해서 쓰더라.
만약에 총무원과 종회에서 사리와 논리가 있고 많은 종도들의 동의를 얻는 직영안이 나오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봉은사 사부대중의 뜻이 없는 직영안이 추진된다면 조계종 승적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막겠다. 한국불교는 바뀌어야 한다.
정치권과 야합 속에 진행되는 봉은사 직영 추진은 철회돼야 한다.
#“정치승은 따로 있다”
내가 정치적 발언이 많이 한다는 주변 평가가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은 행위를 통해 이익을 볼때 붙일 수 있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바른 소리하는 사람이 한국사회에 있어야 한다.
청와대에서 부르면 무릎이 깨져라 쫓아가 밥 한끼 먹는다.
노무현 정권 당시 나는 진사조사 등을 맡는 위원회 위원장직을 제안 받은 적이 있다. 거절했다. 정치권에 연루되기 싫었다.
머릿 속에 아는 낱말이 좌파라는 단어 밖에 모르는 무식한 국회의원. 이런 사람만나서 호텔방에서 야합을 하는 것이 정치승이지 내가 왜 정치승인가.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 구절을 법정 스님이 인용한 것에 박쥐승, 머리깍은 거사, 가사입은 도둑이 있는데, 앞으로는 밀통승, 야합중이라는 꾸지람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교적 가르침으로, 부처님 가르침대로 판단할 때가 됐다. 남의 글, 남의 논문 표절해 대법원 판결이 나도 괜찮은 세상, 정상인가?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 없이 그저 돈만 안다. 여당대표와 자승 원장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음 주에 얘기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