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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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에 감명 받아 세워진 길상사
짧은 역사 속 애틋한 사연 담겨
아미타 부처님을 봉안한 길상사 본법당 전경. 기존의 ‘대원각’을 그대로 두고 법당으로 사용해 일반 사찰의 법당과는 다른 모습이다.


순천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는 서울 성북동 삼각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다. 길상사의 역사는 매우 짧으면서도 그 설립계기가 특이해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길상사는 1960~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다.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 여사는1995년 7000여 평의 대지와 건물 40 여동 등 1000억원 대의 부동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스님은 시주 받은 요정을 길상사로 탈바꿈시켰다.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진 길상사의 내부는 숲속 미로를 연상케 하듯 선방과 요사채들이 숨어있다.
이 곳에는 <여승>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으로 유명한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子夜)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가족의 몰락으로‘진향(眞香)’이라는 기생이된 김영한 여사(법명 길상화, 1915~1999)는 함흥의 회식자리에서 당시 함흥 영생여고 교사를 하고 있던 백석을 만났다.

이후 둘은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됐지만 백석의 부모는 기생인 김 여사와의 혼인을 반대했다. 1938년 백석은 만주로, 김영한은 서울에서 떨어져 지내게 되고 둘은 한국전쟁으로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됐다.

김영한 여사는 백석을 가슴속에 품은 채, 1951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청암장을 인수해 대원각으로 개명했다. 김 여사는 대원각을 군사정권 시절 ‘요정정치’의 산실로도 유명한 국내 3대 요정의 하나로 키웠다.

김 여사는 노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스님을 친견한 뒤 생애의 높고 아름다운 회향을 발원했다.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에게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했다. 10년에 걸쳐 사양하던 법정 스님에게 김 여사는 거듭 시주를 받아주기를 요청했다. 김영한 여사는 1995년 그 뜻을 이뤘다.

1997년 12월 14일 1000억원대 요정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아름다운 법석에서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에게서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만을 받았다. 길상사는 그녀의 법명에서 따온 것이다.

길상사 경내에는 극락전, 범종각, 일주문, 적묵당, 지장전, 설법전, 종무소, 관세음보살석상, 길상화불자공덕비 등이 배치돼 있다.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이기도 한 길상사는 해마다 5월이면 봉축법회와 함께 장애인, 결식아동, 해외아동, 탈북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나은 기자 | bohyung@buddhapia.com
2010-03-19 오후 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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