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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은 실체를 보기 위해, 주변을 깎아 내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내 안의 부처를 찾기 위해 참선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비우고 수행 하듯이 말이죠.”
최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된 한봉석 목조각장(50)은 들 뜬 듯 하면서도 부끄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외곽의 한 조용한 마을에 작업장을 둔 한봉석 작가는 30년 넘게 목조각의 한 길만을 쉼 없이 달려왔다.
한 작가는 2003년도 화재로 소실된 원주 구룡사를 복구하는 작업을 맡았었다. 한봉석 작가는 “구룡사 복원 때 제대로 된 전통양식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오늘날 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자신을 키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현재 맥이 끊겨가는 조선시대 불상을 드물게 재현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저는 기교를 잘 부릴 줄 모릅니다. 기교를 많이 보이면 화려한 맛은 있어도 부처님을 제대로 느낄 수는 없죠. 그래서 저는 작품들을 단순하면서도 투박한 느낌이 많이 들게 합니다.”
한봉석 작가는 “조선시대 후기 불상들이 대부분 단순ㆍ투박한 느낌을 준다”며 “17세기에 불모로 활동했던 희장 스님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느낌을 재현하려고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후기는 억불정책으로 불상이 거의 조성되지 않던 시기였다. 불교가 활성화 됐던 고려시대의 화려한 불상과는 달리 조선시대 불상은 어깨가 굽고, 배가 불룩한 채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대부분 오해하는 것이 조선시대는 불교가 억압을 받던 시기라, 부처님 어깨가 굽고 소극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굽은 듯한 어깨 형상은 오히려 부처님을 편안하게 보이게 합니다. 불룩 나온 배 역시 참선을 오래한 부처님의 편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민적인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부처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목조각장은 1970~1980년대 부흥기였으나, 지금은 그 맥을 잇는 사람이 드물다. 조각하는 사람들 대부분 연령이 40대 이상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외로운 길입니다. 자신만의 인내와 끈기가 부족하면 더더욱 힘이 듭니다. 항상 하심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목조각은 나무를 깎고 다듬는 작업 자체가 너무 힘이 듭니다. 건장한 남자도 쉽게 하기 힘든 것이 바로 목조각 작업입니다. 전수방법이 체계적이지 않은 것도 후학 양성을 어렵게 하는데 한 몫합니다.”
목조각은 스승에 의해 구법 전수와 답습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교육돼 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술은 전수받았어도 조각기법에 대한 정확한 명칭이나, 개념들이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한봉석 작가는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수학하면서 체계적인 후학 양성 방법을 고민 중이다.
“부처님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목불장일도 할 수 없습니다. 계속 불상을 조각해 왔지만 제가 부처님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학문과 기술이 제대로 접목된다면 더욱 좋은 작품들이 나올 것입니다. 체계적인 후학양성을 도모할 수도 있겠고요.”
한 작가는 “조각을 제대로 안 것은 40대 부터이고, 인생을 제대로 안 것은 50대 부터”라며 “30년 넘게 조각을 하고 나서야 부처님의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법장 스님이 심인(心印)이라는 법명을 직접 지어주셨습니다. 심인이라는 뜻은 문자와 형상에 치우치지 말고 보살의 마음으로 작업에 열중하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법명에 깊은 뜻을 담아 주신 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 덕분에 하심 하는 방법을 알게 됐습니다.”
한봉석 작가의 작업장 한 켠에는 불상과 함께 법장 스님의 사진이 모셔져 있다. 한 작가는 매일 작업 시작 전 삼배를 올린다. 마음을 비우고 작품에 임해야 진정한 ''부처''를 조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자라나는 후배들이 좀 더 체계적인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목조각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