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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신도들과 소통 없이 결정된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은 수용할 수 없다. 봉은사를 점령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바치겠다. 총무원장이 겁에 질려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을 포기하도록 하자.”
조계종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을 주지 명진 스님이 공개 거부했다. 총무원과 봉은사의 갈등이 1998년 종단사태 이후 안정되던 불교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교계 안팎의 우려가 커져가는 가운데 그 해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봉은사(주지 명진)는 “3월 14일 경내 법왕루에서 1100여 신도 및 불자들이 동참한 가운데 일요법회가 열렸다. 이날 법회에서 명진 주지스님은 <전심법요>에 관한 법문을 대신해 며칠 전 입적한 법정 스님을 추모하고,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직영사찰) 지정에 대해 총무원 측에 봉은사 사부대중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답변할 것을 공개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날 명진 스님의 법문은 법정 스님에 대한 추모로 시작됐다.
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입적해 지금은 한줌의 재가 된 법정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삶을 향기롭게 바꾸려고 노력했던 스님의 뜻과 가르침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이 스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법정 스님이 번역한 <서산대사>에서 “중도 아니오, 속인도 아닌 체 하는 자를 ‘박쥐중’이라고 하고, 혀를 가지고도 설법하지 못하는 자를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며, 중의 겉모양에 속인의 마음을 쓰는 자를 ‘머리 깎은 거사’라 하고,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옴짝할 수 없는 자를 ‘지옥 찌꺼기’라 하며 부처를 팔아 살아가는 자를 ‘가사 입은 도둑’이라 한다”는 부분을 인용했다.
스님은 “요즘 내가 박쥐 중, 염소 중, 혹은 부처님을 팔고 사는 가사 입은 도둑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며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승인’이라는 엄청난 소식에 우리 봉은사 신도들이 불쌍하고 안됐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을 이었다.
명진 스님은 “조선시대 보우 대사가 불교탄압을 이겨내고 한국불교를 살려냈던 곳이 봉은사”라면서 “1960년대 강남개발이 일자 조계종 총무원이 18만평에 이르는 봉은사 땅을 팔았다. 당시 주지였던 서옹 스님은 분신자살까지 하려했으나 이미 상황이 끝난 후였다. 이후 영암 스님이 한 평, 한 평, 팔려나간 봉은사 부지를 복원했지만 1980년대 조폭들이 사찰에 들어오는 등 또 다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여기 앉아 있는 노보살들은 다 경험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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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이제 좀 절이 되려고 하는데 안타깝다. 정말이지 봉은사 주지는 잘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잘하면 총무원이 손을 대려고 하니 말이다”라면서 “부처님 전에 부끄럽지 않은 승려가 되고자 1000일기도를 했다. 또 다시 싸우는 모습을 보여 신도들에게 상처를 주긴 싫어 걸망 매고 홀연히 떠날까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는 현 총무원장이 봉은사 주인인 신도들과 소통하지 않고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이라는) 큰 결정을 내렸다. 일방적으로 직영사찰 전환을 결정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스님은 “직영사찰은 총무원장이 기분 나쁘거나 쓸 돈을 안올리면 언제든 재산관리인을 쫓아낸다. 몇 개월만에도 바꾸고, 1년만에도 바꾼다”며 “과거에는 사찰 주지 임면 과정에 검은 거래가 있었지만 봉은사 같이 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면 그런 거래는 끊어진다. 그게 불교가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명진 스님은 “종무회의 통과 직후 자승 스님이 만나자고 해 만났다. 자승 스님이‘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죽을 죄를 졌다. 참회한다’고 말했다”며 “나는 ‘원장 뜻이 아닌데 이런 결정을 할 수 없다. 직영사찰로 되면 잘 나가는 사찰을 총무원이 가로챘다고 비판이 일어날 것이고 부결될 경우에도 가로채려 하다가 꼴 좋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니 안건을 철회하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만남 이후 잘 될 것이라 여겼다. 이후 중앙종회 연석회의를 통해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시키고 본회의 투표시에는 종회에까지 참석해 지켜서서 안건을 통과시켰다”며 “여론도 좋지 않고 소통과 화합에도 맞지 않은데 왜 이런 물의를 하는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작정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스님은 “이 자리에는 내가 오늘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자 총무원 관계자들이 와 있을 것”이라며 “확실히 가서 전해라. 봉은사 신도들과 소통 없는 직영사찰 전환은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총무원측 명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스님은 “물의를 빚으면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결정한 이유가 포교벨트 구상이라고 하더라. 그 벨트가 가죽 벨트인지 헝겊 벨트인지 분명히 이야기해라. 150명에 불과했던 일요법회를 1000명이 넘는 불자가 참여하는 법회로 만들어 왔는데 (총무원은) 어떤 것이 진정한 포교인지 명확히 답변하라”고 촉구했다.
명진 스님은 “다음 주까지 내 물음에 총무원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전국사찰과 전국 신도를 대상으로 직영폐지 1000만인 불자운동을 전개하겠다. 만약 과거와 같이 못된 방법, 폭력적인 방법으로 봉은사에 들어오려 한다면 목숨을 걸겠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말 못할 사정이 무엇인지 밝히고, 정치 권력에 의한 결정이었다면 응징하겠다”고도 강조했다.
명진 스님은 “신도들을 생각하면서, 부처님과 불법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내 한 몸을 던지기로 마음을 굳혔다”면서 “다음 법회에는 한 사람씩 더 데리고 오라. 이 도량에 신도들이 꽉 차서 총무원장이 겁에 질려서 직영사찰을 포기하도록 만들자”고 말했다.
한편, 봉은사는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을 보도한 언론 기사를 확대복사해 법왕루 입구 등 경내에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