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 종합
“스님과 같은 시대에 살아 행복합니다"
길상사 조문 현장 현장
11일 오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한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 등 교역직 및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이 길상사를 찾았다.

3월 12일 오전 11시 43분. 법정 스님이 길상사를 영원히 떠났다. 생전 단 하루도 길상사에 머물지 않았던 스님은 11일 입적 후 딱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냈다. 스님은 마지막까지 무소유의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셨다. 스님의 말씀들이 간절히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11일 오전 12시 50분 병원에서 도착한 이후 길상사를 떠날 때까지 딱 하루. 매사에 간단명료했던 스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법정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 소식을 들고 가장 먼저 찾은 이는 송광사 문중스님들이었다. 3~4년 전부터 폐암 치료를 받아 왔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다. 순천에서 급히 올라온 스님들은 행지실(行持室)을 찾았다.

11일 오후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법정 스님이 모셔진 행지암을 찾아 조문했다.


행지실에 모셔진 법정 스님의 법구는 유훈대로 수의 대신 가사로, 관 대신 평상 위에 모셔졌다. 스님을 보고 나온 조문객들은 차분한 모습이었다. 때론 눈물을 글썽이는 신도들도 있었다. 다비식이 있기 전까지 길상사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스님의 유지에 따라 장례식 없이, 빈소 대신 순천 송광사, 불일암, 서울 길상사에 분향소만 마련됐다. 조화, 조문, 부의금도 없었다.

조문을 하고 나온 인경 스님(명상상담연구원 원장)은 “법정 스님을 20대 때 처음 뵈었었다. 스님은 후배들에게도 늘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삶의 표상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내게 한 권의 경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먹으로 된 게 아니다. 펼쳐도 글자 하나 없지만 항상 광명이 두루비친다’라는 말씀을 하시던 스님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며 “법정 스님은 <무소유>로 널리 알려졌지만 <숫타니타파>등 불교초기 경전을 대중에게 알린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입적 4시간 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해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 교육원장 현응 스님, 포교원장 혜총 스님 등 교역직 및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이 길상사를 찾았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법정 스님의 분향소가 있는 길상사를 찾기에 앞서 스님을 대종사 법계를 추서했다.

스님은 애도문에서 “법정 스님은 그동안 ‘무소유’의 지혜를 일러 주시고,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몸소 실천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행자의 본분을 지켜 온 큰 스승이셨다”며 “또한 스님은 일생동안 수많은 저서를 남기시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하셨다”고 애도했다.
조계종 대변인 원담 스님은 “스님은 살아 생전에 자신에 대한 엄격함, 사물에 대한 따뜻한 정신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며 “종도들과 더불어 극락왕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前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전국비구니회 회장 명성 스님 등 교계 원로스님들과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1일 설법전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인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관 스님은 다비준비위원회 대변인 진화 스님에게 법정 스님의 유언을 듣고는 “간단히 하라”며 법정 스님의 유지에 따를 것을 당부했다. 지관 스님은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발전 뿐 아니라 국민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법신으로 영원히 국민을 이끌어주고 채찍질을 가해주길 바란다”며 조의를 표했다.

정계에서도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정세균 민주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고홍길 문화부장관,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청와대불자회장), 주호영 특임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정길 대통령실장, 박형준 정무수석, 권재진 민정수석, 진동섭 교육과학문화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진동섭 교육과학문화수석, 고건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등이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방문에 앞서 법정 스님 측에 조전을 보내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 대통령은 조전에서 “존경하는 법정 큰스님의 원적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살아생전 빈 몸 그대로 떠나셨지만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겨주셨다. 자비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삶 자체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참모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스님의 대표작인 <무소유>를 책이 닳을 정도로 읽었고 해외 순방이나 휴가를 갈 때도 항상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지녔다고 한다.

11일 저녁 8시쯤 방문한 박근혜 의원은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큰 어른이었다고 생각한다. 스님의 글과 보도가 나오면 빼놓지 않고 읽었다”며 “인생의 지침이 되는 큰 가르침을 주셨다”고 추모했다.
정세균 대표는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지도자였다. 무소유의 큰 가르침으로 중생들에게 희망을 주셨다. 스님의 가르침과 정신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며 애도했다.
김용옥 교수(순천대)는 “무소유의 가르침을 가르쳐준 분이다. 그 이상의 큰 가르침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진각종 통리원장 혜정 정사도 분향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이밖에도 각 종단 및 이웃종교인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등 각 종교인들과 진각종 통리원장 혜정 정사, 태고종 법현 스님 등 종교와 종단을 초월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11일 원불교 박청수 교무에 이어 12일 교무단이 스님을 찾았다. 이진여 원불교 평창교당 주임교무는 “원불교 출가 전 송광사에서 수련회를 하고 스님이 계시던 불일암에서 스님을 뵜었다. 그때 멜론을 대접하셨다”며 스님의 따뜻한 모습을 추억했다. 이어 주임교무는 “스님의 법문은 산 속에 파묻힌 말이 아니라 유행타지 않는 고전 같다. 나의 정신ㆍ수행의 멘토다”라며 “스님의 마무리를 보며 ‘역시, 역시 스님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동시대에 함께 수행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전했다.

장경동 목사(대전 중문침례교회)는 “종교적인 것을 떠나 스님의 글이 너무 좋다. 개인적으로도 스님의 책을 아끼고 사랑한다. 스님의 책은 욕심으로 가득찬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최고의 책들이었다”고 말했다.
길상사 바로 아래에 위치한 천주교성북동성당에서 온 한 사도는 “법정 스님을 뵌 적은 없지만 스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며 “스님의 삶은 단순했다. 맑고 깨끗하게 살았던 수행자의 모습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강조했다.

길상사 설법전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스님에게 3배의 예를 올리며 스님의 열반을 애도했다.


이에 앞선 9일, 삼성그룹 홍라희 여사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이던 법정 스님을 문병하고 스님의 병원비 6200만원을 대납했다.
전국에서는 서울 길상사, 순천 송광사 등 다비준비위원회의 공식 분향소 외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분향소 설치가 잇따르고 있다. 다비준비위원회는 12일까지 서울 정토회관, 대전 백제불교회관, 부산 ‘맑고향기롭게’ 부산모임 열린 법당, 경남 창원 성주사, 대구 ‘맑고향기롭게’ 대구모임 열린법당, 광주 태현사, 지장왕사, 무각사, 보성 대원사와 프랑스 파리 길상사, 뉴욕 사암연합회 등에도 분향소가 설치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끝까지 무소유를 가르치셨다. 이생에서의 인연을 다하고 늘 입던 가사에 쌓여 사뿐히 떠났다. 중생들은 스님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스님의 운구를 따라가 보지만 스님은 잡히지 않았다. 바람처럼 떠나셨다. 무소유조차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중생들의 눈에는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글=이상언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un82@buddhapia.com
2010-03-11 오후 11:27: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