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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못하고 숨어서 눈물만 흘렸다”
원폭2세 환우 위한‘합천 평화의 집’개원
#국내 최초 원폭2세환우 위한 쉼터 설립


원폭2세환우를 위한‘합천 평화의 집’이 문을 열었다. 위드아시아는 장기적으로 전문요양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아파도 아프다고 제대로 말 못하고 숨어서 눈물을 흘리던 세월이 참 많았습니다.”
국내에서 원폭피해자가 가장 많아‘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경남 합천군에 3월 1일 원폭2세환우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첫 쉼터가 생겼다.
국내외 빈곤 및 소외계층을 위한 구호단체 위드아시아(대표 지원ㆍWITHASIA)가 원폭2세환우를 위한‘합천 평화의 집’을 개원한 것이다.
해방 65년이 흘렀지만 한ㆍ일 간 아직도 미해결된 과거사가 남아있다. 일본군 위안부할머니·원폭피해자 문제가 대표적이다. 위안부할머니들은 18년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집회횟수 900회를 넘겼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사과도 배상도 않고 있다. 한국 원폭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기는 하나 위안부문제만큼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다. 일본정부는 자신들도‘원폭피해국’이라는 전쟁피해국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일본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은 한국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어떠한 공식사죄와 보상도 외면하고 있다.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을 당시 피폭자는 70만여 명에 이르렀다. 그 중 한국인 피폭자는 7만여 명으로 생존자 2만3000명은 한국으로, 2000명은 북한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일본에서 사망했거나 남겨졌다. 원폭피해자 1세대 상당수는 사망했고 2010년 현재 남은 이는 2600여 명이다. 피폭의 상처는 1세대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낳은 자녀인 ‘핵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2ㆍ3세대에게 병마와 가난은 대물림 돼 이어졌다. 이들은 다운증후군, 정신지체장애, 골다공증, 무혈성괴사증 등 정신ㆍ육체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많은 원폭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폭2세 환우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과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은“원폭2세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나 실질적인 후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병고에 시달리는 우리들은 정작 마음 놓고 문제를 호소하고 해결할 변변한 공간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합천에는 뜻 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합천 평화의 집’소장 혜진 스님, 지원 스님, 연호사 주지 진각 스님을 비롯해 원폭 1세대와 2ㆍ3 세대 자녀 100여 명이 참석했다.
지원 스님은 축사에서“경술국치 100주년과 해방 65주년을 맞아 사회에서 소외된 원폭 2세 환우들의 복지와 인권에 도움을 주기위해 이 쉼터를 마련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스님은 이어“원폭 피해자 1세들은 상당수가 사망했고 2ㆍ3세들만이 남아 있다. 그분들 중 일부는 병고로 고통 받아 취직도 힘들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일찍이 이런 시설이 있어야 했다”며“늦었지만 합천에 2ㆍ3세들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희망을 안고 갈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합천 평화의 집’은 위드아시아가 100㎡의 개인주택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원폭 피해자2세 환우들이 요양할 수 있는 방 3개와 거실 겸 사무실이 마련돼 있다.

앞으로 평화의 집은 단기적으로 △원폭2세 환우들의 건강과 복지 프로그램 운영 △가정방문 케어 및 생활지원 △환우 치료비 지원 및 지원 상담 △한일시민단체 간 교류 협력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땅 한 평 사기’모금활동을 통해 합천 인근에 부지를 마련, 원폭2세환우를 위한 전문요양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혜진 스님은“향후 원폭 피해자 2세 환우들을 위한 전문 요양치료시설도 설치할 예정”이라며“원폭2세 환우 문제는 인간의 존엄 등 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평화의 집 전경.



#원폭2세 환우 세상에 알린 故김형률씨

‘원폭2세 환우’의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2년 3월 김형률(1970~2005)씨에 의해서다.
故김형률씨가 한국 최초로 자신이 원폭2세환우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것. 김 씨는 병든 몸을 이끌고 원폭2세 환우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헌신하다 2005년 5월 35세의 일기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합천 평화의 집’이 탄생한 것도 김씨의‘커밍아웃’과 이후에 전개된 활동이 큰 계기가 됐다. 김형률씨는 1970년 부산에서 아버지 김봉대(72)씨와 원폭피해자 1세인 어머니 이 곡지(71)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온갖 병치레로 지내온 김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급성 폐렴이 발병해 병원에 입원한 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1995년 25세가 된 김 씨는 폐렴으로 빈번하게 입원을 하자 정확한 병인을 알기 위해 특수피검사를 했다. 그 결과 모체로부터 유전 받아 선천적으로 면역이 결핍되는‘선천성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음을 발견하고 자신이 원폭피해 2세대라는 것을 인식한다. 김형률씨는 2001년‘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일본에 승소해 원호법을 똑같이 적용받게 된다는 소식에 기뻤지만 1세들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 2세들의 고통을 알려야겠다고 발원한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 회장인 그는 2002년 커밍아웃 이후부터 2005년 죽기까지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데 온몸을 바쳤다.
이날 쉼터 개원식에 참석한 김형률씨의 부모 김봉대ㆍ이곡지 부부는“병고와 빈곤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원폭 2ㆍ3세 환우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개인적인 어려움에도 자기의 문제를 드러내놓아 다시는 이 땅에 핵으로 인한 희생자가 없도록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준 분들께 감사드린다”며“5년 동안 아들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왔다. 이런 쉼터가 열려 아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들이 조금씩 해결될 것 같아 기쁘다”고 눈물을 보였다.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김형률씨는 원폭환우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싸웠지만 한국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를 규명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상도의 강원도’라고 할 정도로 합천은산으로 둘러싸여 농사짓기가 더욱 어려웠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인의 식량 확보를 위해조선의 농업 전체를 원료공급지로 만들어 강제보급정책을 실시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가속화 될수록 합천 농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돼갔다.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의 만주침략 이후 전쟁 물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합천 농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져 많은 합천 농민들이 이농의 괴로움을 겪었으며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공업도시인 히로시마로 도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광기어린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종식됐다. 살아남은 합천 출신 한국인들은 고향으로 병든 몸을 이끌고 돌아와야만 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피폭자 2600여 명 중 60%이상이 합천출신이다.



# 원폭피해자특별법 통과 돼야…

‘합천 평화의 집’원장 혜진 스님.



“10년 동안 갑상선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자식들도 피부질환을 앓고 있어 마음이 아파요.” “15세 때부터 대퇴부 뼈가 녹아내려 10년마다 인공뼈 이식수술을 받아야 해요.”
원폭피해 1세대들로부터 각종 질병을 유전 받아 앓고 있는2세대들은 이같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정부 발표에 의하면 한국에는 원폭 1세대의 자녀들인 2세대는 7000~1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30%인2300여 명이 다양한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 일본 정부에 여러 차례 원폭피해 배상을 촉구한 끝에 간신히 원호수당을 받고 있는 1세대들과 달리 2세대들은 한ㆍ일 양국의 외면을 받아오고 있다. 그들은 부모 세대가 겪은 아픔을 인정하고 이를 대물림 하는 상황을 국가에 알리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1세들의 모임인‘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2세 환우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만들어진‘한국원폭2세 환우회’의 활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 부모의 입장에서는 우려할 만한 문제다. 자신들이 겪었던 사회적 차별을 2세 환우뿐 아니라 건강한 원폭피해2세대 자녀들도 받게 될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한정숙씨는 7남매들과 함께 자랐다. 큰 오빠는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병명도 모른 채 죽었다. 나머지 6남매들도 뚜렷한 병명 없이 극심한 두통이나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동생은 30대 초반에 치아가 모두 빠져버렸다. 원폭의 피해는 2세에서만 끝나지 않아 한씨의 아들 또한 선천성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장애판정이라도 나면 정부에서 지급되는 복지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원인모를 관절염, 협심증, 고혈압 등의병으로 고생하는 2세들은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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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


기초생활수급자인 한씨는 구청으로부터 한 달 지원으로 28만원을 받고 있다. 정상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기도부족한 액수다. 현재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와 그 피해자 자녀의 실태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이하 특별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에 상정돼 있지만 통과가 되지 않아 정부로부터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회장은“죽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도 병원비를 걱정해야하는 것이 2세들의 실정이다. 상정된 특별법은 언제 통과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선 지원ㆍ후 규명으로 자활 능력이 없는 원폭 피해자 2세들에게 당장 생계 및 의료비 지원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이나은 기자 | bohyung@buddhapia.com
2010-03-05 오후 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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