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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3년 기축년 동안거 해제일(2월 28일)을 앞두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해제법어를 내렸다.
법전 스님은 흥화 선사와 후당 장종황제의 문답에서 화두를 내렸다. 법전 스님은 흥화 선사와 장종 황제가 서로의 경지를 알아볼 정도의 안목을 지닌 사이에서 나오는 문답이라고 설명하고 ‘어느 누구도 군왕의 보물을 흥정할 수가 없다’는 대답에서 흥화 선사는 황제의 공부 경지를 긍정했는가 안했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법전 스님은 “해제 이후에도 만행하면서 동안거 한 철 동안 챙겼던 ‘자가보장(自家寶藏)’을 제대로 챙기기만 한다면 그 해답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끊임없는 화두 참구를 강조했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가 전국 선원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己丑年 冬安居 禪社芳啣錄>에 의하면 전국 97개 선원(총림 5곳, 비구선원 59곳, 비구니선원 33곳)에서 총 2,244명(비구 1,196명, 비구니 844명, 총림 204명)의 대중이 용맹 정진한 것으로 집계 됐다.
다음은 법어 전문
2553(2009)년 동안거 조계종 종정 도림법전 대종사 해제법어>
군왕의 보물을 누가 흥정 하는가
흥화존장(興化存獎) 선사에게 후당(後唐)의 장종(莊宗)황제가 물었습니다,
“짐이 중원을 평정하고 보물을 한 개 얻었는데, 아무도 값을 매기지 못합니다.”
“폐하의 보물을 잠깐 보여 주소서.”
황제가 두 손으로 복두건(幞頭巾)의 끈을 들어 보였더니 선사가 말했습니다.
“군왕의 보물을 누가 감히 흥정하겠습니까?”
달마대사가 양나라 무제를 찾아간 것은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염관(鹽官)선사와 선종(宣宗)임금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것은 함께 안목을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해와 달이 때를 맞추어 뜨고 진다면 광채가 있는 곳의 따스한 바람결은 꽃과 나무를 서로 감화시킵니다. 이처럼 인왕(人王)과 법왕(法王)이 서로 만날 때엔 서로의 위치에서 걸 맞는 문답이 있어야 제격인 법입니다. 어쨌거나 전륜성왕의 상투 속에 있는 구슬을 경솔하게 남에게 함부로 보여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숭산혜안(崇山慧安)선사는‘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를 묻는 납자들에게 “자신의 서래의(西來意)는 묻지 않고 왜 남의 서래의(西來意)만 묻고 있느냐?”고 도리어 힐난했던 것입니다. 마조선사 역시 “자기 집에 있는 보물창고는 돌아보지도 않고서 더욱이 그 집마저 버리고서 밖으로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으니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일갈했던 것입니다.
보물을 보여 달라는 흥화선사의 질문에 장종황제는 두 손으로 복두건(幞頭巾)의 끈을 들어보였을 뿐입니다. 그러자 선사는 ‘어느 누구도 군왕의 보물을 흥정할 수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법문에서 흥화선사는 황제의 공부경지를 긍정한 것입니까? 긍정하지 않은 것입니까?
만일 인정했다면 흥화의 안목이 제대로 된 것입니까?
만약 인정하지 않았다면 흥화의 허물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해제 이후에도 만행하면서 동안거 한 철 동안 챙겼던 ‘자가보장(自家寶藏)’을 제대로 챙기기만 한다면 그 해답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불엄위(眞不揜僞)하고
곡불장직(曲不藏直)이라
참은 거짓을 가리지 않고
굽음은 곧음을 감추지 못한다.
2553(2009)년 동안거 해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