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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아들이 점심에 햄을 구워달라고 한다. 햄을 참 좋아하는 아들인데 평소에는 잘 사주지 않는다. 겨우 졸라야 먹을 수 있던 햄이 주방에 있는 걸 발견하곤,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햄을 구워달라고 아우성이다. 햄은 설날이라 선물로 들어온 것이었다. 구운 햄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들을 보니 갑자기 어제 읽은 <우리 안에 돼지>가 생각난다.
암퇘지는 오직 새끼돼지를 낳기 위해 존재한다. 인공수정을 통해 새끼 낳는 일만 반복하던 암퇘지는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되면 결국 도살되고야 만다.
일 년 동안 2~3번의 임신을 통해 27마리의 새끼돼지를 낳게 되는 암퇘지는 젖을 먹기 위해 달려드는 새끼돼지들 때문에 항상 젖꼭지의 압박에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암퇘지의 유두 손상을 막기 위해 새끼 돼지의 이빨을 깎거나 간다.
또한 새끼 수컷돼지는 특유의 냄새를 없앤다는 이유로 마취도 없이 거세를 당하는데 이 모두가 ‘이익 창출’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벌어지는 행위들이다. 돼지들은 이렇게 공장형 밀폐식으로 사육되고, 대규모 양돈 경영방식은 돼지들을 기계처럼 다룬다.
그런데 이런 고통은 비단 돼지들만이 받는 것이 아니다. 공장식 축사에서 일하는 사육자들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일상화된 폭력으로 인해 심리적, 윤리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공장식 축사에서 일하는 솔렌의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돼지들이 무더기로 죽은 날 부엌에서 혼자 운다. 하지만 생계가 걸린 문제이니, 사육사들은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동물을 사랑하는 어린 소녀 솔렌의 눈에 비친 돼지들의 삶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모든 가축사육방식의 어두운 면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다른 방식인 동물을 가두지 않고 풀어서 키우는 전통적인 사육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꼭 절망적이거나 또 현실적으로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지만, 햄 하나를 사더라도 멈칫하게 될 것이고, 날로 늘어가는 인공 식품을 무턱대고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동물과 노동자, 환경을 존중하는 새로운 사육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경고로 읽히기도 한다.
우리 안에 돼지|조슬린 포르셰, 크리스틴 트리봉도 지음|배영란 옮김|숲속여우비|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