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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am Pujemi, Dhammam Pujemi, Samgham Pujemi(부처님에 귀의합니다. 불법에 귀의합니다. 스님들에 귀의합니다).”
백의(白衣)의 출가후보자들이 스님이 되기 위한 출가 충성 서약을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 광활한 규모의 광장에 삭발한 채 줄맞춰 앉은 3만 여 출가예정자의 합장한 모습은 엄숙함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태국 방콕 담마까야 사원의 담마까야 세티야(Maha Dhammakaya Cetiya)광장에서는 2월 6일 태국 남자들이 일생에 한 번은 경험한다는 수계의식이자 단기출가인 부앗낙(Buat nak)행사가 봉행됐다.
이날 수계식에는 1월 19일 전국 340여 사찰에서 출가한 3만4862명이 참석했다. 수계자 중에는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온 외국인 출가자도 150명에 달했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수계의식은 한 소년이 책임감을 갖는 어른의 세계로 들어감을 알리는 성년의례이다. 국왕을 비롯한 태국 남자들은 대부분 인생의 한 시기에 단기 출가를 해서 ‘부앗 프라(Buat Phra)’는 승려의 생활을 하며 그 시기는 보통 그들이 결혼하기 직전이다.
이번 행사는 출가자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을 우려한 태국 정부와 태국 승단이 마련한 것이다.
‘10만 승려 집단 수계의식’은 이번 대규모 수계의식의 공식명칭이다. 태국에서는 금년에만 매회 3만여 출가자가 참여하는 행사를 3차례에 봉행한다. 이날 행사에 든 비용은 태국 돈으로 7억5000만 바트(bath), 한화로 환산하면 약 263억원 이다.
출가자들은 수계 전 자만심과 성욕을 버리는 상징의 머리와 눈썹을 미는 삭발의식을 마친 상태였다. 출가의식은 빨리어 경전을 암송하며 탑 주위를 세 번 도는 순례의식으로 시작됐다. 새벽이라 어둠이 사라지기 전인 이른 시각임에도 세티야 광장에는 출가의식을 보기 위해 모인 흰옷을 입은 출가자의 가족과 불자들로 가득 찼다.
이날 행사에는 10~60대의 다양한 연령대가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이번 행사가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닌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가정과 사원, 국가의 안녕을 비는 자리로 마련됐기 때문이다.
출가자들은 거대한 세티야 광장 내 탑 순례를 마친 뒤 주황색 가사를 수지하고 주지스님에게 세 번 부복(?伏)한 다음 수계를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주지스님은 인간 육체의 덧없음을 설파하는 경전을 암송한 후 수계를 상징하는 노란 띠를 출가자의 몸에 걸쳐줬다.
출가의식은 오후 4시에 다시 이어졌다. 수지받은 주황색 가사를 갈아 입은 출가자들은 각 사원별로 출가법요식을 봉행한 뒤 수계법사의 선창에 따라 10계를 수지한 후 “아침마다 계를 암송하고 가슴 속에 불법을 항상 지녀 행복한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을 서원했다.
수계의식에 참가한 일면 스님(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수만 명의 수행자가 49일간 불법에 귀의하고 나라의 안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큰 공덕”이라며 “오늘 계를 받은 수행자들의 공덕으로 태국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계를 마친 3만5천여 명의 사미스님들은 다시 출가 사찰로 돌아가 해제일인 3월 8일까지 오후불식, 탁발수행 등 실제 스님들과 똑같이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날 사미계를 수지한 몽콘 씨일리항소(44) 스님은 행사에 두 번째 참여했다. 스님은 “첫 번째 출가는 스무 살 무렵, 대학 여름방학 때 다들 하는 것이라 별 생각 없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며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인간의 생사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접한다. 내 힘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며, 회의를 느끼고 우울함에 빠질 때가 많다. 출가 의식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출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10만 출가의식’을 이끈 담마까야사원 부주지 프라바바나(Phrabhavanaviriyakhun) 스님은 “태국불교의 포교활동이 침체 상태다. 대규모 출가행사는 3년 전부터 기획했다. 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았지만 전국 각 사원의 스님들이 주축이 돼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현재 태국의 출가자는 감소 추세이고, 이들을 가르칠 법사스님들도 부족한 상태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서 출가자와 이들을 가르치는 법사 스님을 함께 배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10만 명 출가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담마까야 사원만의 명상 수행과 탁발수행이 있기에 가능했다.
프라바바나 스님은 “2년 전 1000명의 스님들과 탁발행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50만 명의 스님이 참여하는 행사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힘을 얻어 10만 명 출가라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며 “이 같은 결집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원에서 가르치는 명상수행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담마까야 사원은 남방불교국가에서는 드물게 참선을 위주로 수련하는 선센터로 150만 여 평의 부지에 태국의 유명 인사들이 신도로 참여하며 전 세계에 51개의 분원을 갖고 있다. 사원은 39년 전 부터 명상프로그램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명상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인터뷰] 태국 수계의식 참석한 일면스님
-10만 승려 출가의식을 본 소감은?
“오늘 태국에서 전무후무하게 많은 수의 인원이 사미계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대규모 출가행사가 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담마까야 사원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태국을 오가며 현 부주지 스님과 인연을 맺었고 서로 양국의 불교교류와 발전에 대한 고민이 비슷함을 알게 됐다. 이후 담마까야 사원과 제가 맡고 있던 군종교구와 광덕학원의 자매결연을 체결하기도 했다. 담마까야 사원을 통해 태국불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 한ㆍ태 불교교류를 위해 어떤 활동을 펼칠 예정인가?
“주지스님과 두 가지를 논의했다. 첫 번째는 한국에 담마까야 사원 분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내 태국인들에 대한 공격적인 선교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담마까야 한국분원이 설치된다면 그들의 신앙생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담마까야 사원에 생명나눔운동을 전파하는 것이다. 생명나눔의 의미와 방법을 설명했고, 사원측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료 검토와 실무 논의를 통해 추진해 나가겠다.”
-한국불교에서도 출가자 감소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출가자 감소는 우리 불교가 너무 침체되어 있고 활동범위가 소극적이라는 데서 기인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스님들이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스님들이 솔선수범하고 앞장서서 포교에 전력투구 한다면 출가자도 절로 증가할 것이다.”
태국의 단기출가 행사 부앗낙(Buat nak)은?
전체 국민의 약 95%가 불자인 태국에서 수계의식은 남자가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통과의례와 같다. 태국 남성들은 대체로 만20세 전후에 단기출가를 하는데, 이는 출가 자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님이 되기 위해 남자는 20세 이상으로, 전염성 질환이 없는 건강한 신체를 지녀야 한다. 부모나 승려를 죽인 경력이 있으면 안되고 부모의 허락을 얻어야 하며 가족이나 다른 경제적인 부담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신체에 문신을 새겼거나 마약에 중독된 이는 단기출가에 참여할 수 없다. 최근에는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됐다. 승려가 되는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자기 억제와 명상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것, 그리고 자신의 부모에게 공덕을 돌리기 위함이다.
한편 태국에는 여성 수행자인 ‘비구니’ 제도가 없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남편이 수계를 하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한다. 태국 여성들은 이러한 금지를 성차별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자신이 승려가 될 수 없는 대신 가능한 많은 공덕을 쌓는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머리를 깎고 사원에서 수행을 하기도 하는데, 탁발을 도는 대신 신도들의 공양으로 생활한다. 태국 내에는 이러한 여성 수행자들을 위한 사원이 10여 곳 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