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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는 인근 직장인들과 관광객들에게 휴식 공간과 불교를 알리는 포교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오가는 조계사는 불자ㆍ비불자의 구분 없이 도심 속에서 불교의 향취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조계사에 가면 설치미술 작품 ‘반야심경’을 볼 수 있다. 경전을 현대예술로 표현한 조형물이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지만, 사찰에서 만나는 예술작품인 까닭에 조계사를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반야심경은 작년 10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조계사 경내에 설치됐다. 미술가 이종섭씨가 <반야심경> 260자를 쇳물로 써내려간 가로 14m, 세로 7m의 대형 조형물이다.
이 씨가 2년여에 걸쳐 제작한 작품으로, 특별한 장소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전시형식이다. 이 씨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이 작품을 사람들과 마주치게 해 생경스러움을 만들어 주려고 했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 ‘반야심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관심이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의 행보에 대해 더 많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유는 철거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은 설치조형물인 까닭에 한번 작품을 설치하고 해체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며, 규모도 큰 편이어서 전시를 한번 하기 위해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조계사에서 철거하면 이전해서 전시할 공간이 찾지 못한 상황이다. 미아 신세가 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조계사 스님들이 애당초 경내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며 “조계사의 이런 태도 때문에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사 홍보팀 관계자는 “주지 스님이 작품을 철거하라고 한 것은 맞지만, 계약했던 시간보다 더 연장해 전시를 이어왔고, 당장 작품을 철거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바는 없고, 단지 땅이 녹는 봄쯤이 되면 작품을 철거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종섭 작가는 “12월 초까지 전시 예정이었다. 예상외로 조계사를 찾는 분들에게 호응이 좋아 지금까지 계속 전시해오고 있었다”며 “하지만 앞으로의 전시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교 팝 아티스트 김영수씨는 사찰이 문화공간 제공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스님들은 사찰 건물 조성 시 너무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찰에 불교조각공원 같은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보는 시각이 닫혀있다. 불교도 이제는 열린 눈과 마음으로 문화를 함께 향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는 “사찰은 대체로 부지가 넓다. 문화공간으로서 활용할 가치가 높다. 산사음악회나 문화축전 등을 통해 불교미술제, 현대불교미술 비엔날레 등을 개발해 불교도 알리고, 불교를 토대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건축법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 건립 시 친환경적인 녹지시설과 함께 조형물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까지 마련한 것은 현대인들이 환경과 문화적 공간에 점차 관심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조계사 ‘반야심경’ 해체 건은 사찰의 문화공간 활용 마인드가 불교계에 부족함을 반증하는 한 예이다.
교계 한 전문가는 “불교문화는 ‘옛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불교가 오늘을 사는 대중에게 다가서려면 사찰부터 불교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