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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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한국 고대불교 간직한 문화 寶庫”
불교학연구회, ‘제주 민속과 불교’ 학술적 조명
불교학연구회가 제주 약천사에서 개최한 제주불교 주제의 특강 후 참석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옛날 제주 물케(現 한수리)의 한 어부가 배를 타고 바다를 나섰다가 태풍을 만났다. 표류 끝에 어부가 도착한 곳은 외눈박이 땅이었다. 그 곳의 영등대왕이 떠내려 온 어부를 살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왔다.
“어부야, 돌아갈 때는 ‘개남보살’을 부르고 돌아가거라.”
“네, 알겠습니다. 개남보살, 개남보살….”
어부는 영등대왕의 가르침대로 ‘개남보살’을 부르며 바다길을 나섰다. 물케에 거의 다다를 무렵 어부는 생각했다.
“이제는 ‘개남보살’을 부르지 않아도 되겠지.”
어부가 ‘개남보살’ 칭명하기를 멈추자 순간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어부는 표류해 다시 외눈박이 땅으로 되돌아갔다.
외눈박이들이 개를 데리고 몰려들며 어부를 잡아가려는 것을 영등대왕이 돌(왕석) 밑에 어부를 숨겨 다시 목숨을 구했다.
“반드시 도착할 때까지 ‘개남보살’을 부르도록 하고, 집에 가서는 음력 2월 초하루에는 나를 생각하라.”
영등대왕의 가르침대로 어부는 ‘개남보살’을 열심히 부르며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영등대왕은 어부를 숨겨줬다고 해 외눈박이들이 죽여 세 토막을 내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등대왕의 머리는 제주 우도 해안에 떠올랐고, 몸체는 제주 칠멀이당 아래에, 발 부분은 물케 매출물 위에 올랐다.
영등대왕의 도움으로 물케로 돌아온 어부는 생명의 은인인 영등대왕의 흔적을 모아 영등하르방당(現 제주시 대림하동 1888번지 소재)을 세워 영등할아버지의 혼을 위로했다.

제주의 영등대왕신 전설이다. 그 후로 제주 어부들은 풍랑을 만나면 “개남보살, 개남보살…”하며 ‘개남보살’을 찾는다. 영등대왕이 어부에게 알려준 ‘개남보살’은 누구일까?

불교학연구회(회장 본각)은 1월 28일 제주 약천사에서 ‘제주 불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2010년 겨울워크숍을 개최했다.

행사에서 문무병 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은 “개남은 제주 방언으로 개남보살은 관음보살”이라고 주장했다.

문 이사장은 특강 ‘제주 민속과 불교’에서 “제주불교에 나타난 불교와 무속의 결합을 △제주도 당신앙과 해신(海神)ㆍ산신(山神)ㆍ수신(水神)ㆍ조상(祖上)과의 결합 △제주 동회천 화천사 오석불 등 고려불교의 전통의 보존 등 무속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세속화를 설명했다.

문무병 이사장은 “제주불교는 아시아문화의 중심이다. 제주불교의 특징은 불교와 무속이 습합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해 온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금순 제주불교사연구회 연구원은 ‘제주불교의 과거 현재 미래’ 주제의 특강에서 고려시대 연등제가 조선의 연등절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러 영등굿으로 바뀐 사례 등을 통해 오늘날 제주불교가 갖고 있는 특징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과정을 설명했다.

특강에 이은 종합토론에는 문무병 이사장, 한금순 연구원 등 발표자를 비롯해 성원 스님(약천사 주지), 수암 스님(금붕사 주지), 고대만 제주대 교수, 이병욱 고려대 외래강사가 참석해 제주불교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수암 스님은 “불교와 무속이 습합돼 제주불교를 형성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면서 “섬지역 특성상 외부문물의 유입이 제한적인 제주는 육지와 달리 전통불교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제주불교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 등 삼국이 탐라국과 무역관계를 통해 불교를 전했다는 북방전래설과 석가모니부처의 제자들이 뱃길을 따라 불교를 전했을 것이라는 남방전래설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제주불교 전래시기에 관해 수암 스님은 “공식적으로 불교는 고려 덕종(1034)때 전래됐을 것”이라며, <고려사>의 “임금이 탐라에서 팔관회에 참석했다”는 기록을 소개했다. 이어 스님은 “연등공양의 하나인 팔관재에 임금이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교전래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제주불교에는 몽고불교 형태인 라마교의 모습도 남아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수암 스님은 “고려시대 몽고가 일본침략의 전초기지로 제주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당시 몽고인들은 수정사 등을 몽골형식(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건축했다”고 말했다.

수암 스님의 제주불교 전래설 설명에 문무병 이사장은 “제주불교의 근간은 남방불교일 것”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문 이사장은 “불교는 물길 따라 바다로 올라왔고, 무속은 시베리아에서 바람길을 따라 내려왔다”면서 “무불(巫佛) 습합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육지에서는 조선시대부터 깨지기 시작했지만 육지의 유교적 전통이 제주에서는 발을 디딜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무병 이사장은 “북방에서 전해진 불교는 수정사 등 제주 북부지역에 자리 잡았고, 남방에서 전해진 불교(전통제주불교)는 제주 남부를 비롯해 한라산 기슭 등에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성원 스님은 “문화의 시간차 일뿐 제주불교가 육지불교와 특별히 다른 점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스님은 제주가 아닌 한국불교를 ‘육지부 불교’라 표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스님은 “육지에서는 전통종교인 마을의 당 등이 근대화를 거치며 순식간에 사라진데 반해 제주에서는 그 훼손이 덜했다”며, “제주의 신앙형태는 육지보다 훨씬 순수하다”고 강조했다.
신행 형태에 대해서도 성원 스님은 “참선과 기도정진만이 불교의 바른 신행이며,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불자의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주장은 불교의 순수성 훼손하는 것이다. 종교는 단순한 믿음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제주 김영사굴의 판관 서린의 비를 보면 임진왜란 이후에도 오랫동안 여자를 공양올렸다는 충격적인 기록이 있다”면서 “달리 보면 이러한 사실은 제주가 급격한 근대화에 휘말리지 않고 옛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제주의 불교세는 전국 어느 곳보다 우세하다. 이는 불교가 경전, 참선, 공사상 등의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형태로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어가 일궈낸 결과”라며 “제주불교를 지나치게 무속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제주불교의 우수성을 바로 알아 육지부 불교도 참고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고대만 교수는 “제주 불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는데 있어 무속과 불교의 관계는 중요한 포인트”라면서 “이는 제주불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에 얽힌 쟁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고 교수는 “지금까지 선행연구가 제주의 미륵신앙과 무속에 담겨진 미륵신앙만을 연구했으나, 타지역의 미륵신앙과도 종합해 연구한다면 제주불교의 독특함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 제안했다. 또, “제주 당 신앙 가운데 ‘본풀이’(제주 전통제의)의 작성자와 형성시기를 밝히면 불교와 무속의 습합과정을 보다 명확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제주불교의 원류와 변천과정을 점검한 데 이어 미래에 대한 담론도 오갔다.

한금순 연구원은 “제주불교의 특징 중 하나가 (사찰에서의 신중기도 대신에) 가정에서 안택기도를 하는 것”이라면서 “제주 연등굿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는 등 문화에 대한 관심은 늘었지만 제주도민의 신앙심을 발휘하는 모습은 옅어지고 연구적 접근만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제주사람으로서 제주불교만의 신앙형태에 대한 애정은 있으나 미래 제주불교의 모습은 육지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참선과 경전, 기도 등을 하는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무명 이사장은 “고려시대에는 불교도 무속도 국교로 취급됐다.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 제주”라면서 “산신굿을 산신불공으로, 용왕제를 용왕불공이라 부르며 완전한 토착화를 이룬 것이 제주불교의 강점”이라고 주장했다.

고대만 교수는 “과거의 무불시대가 또 다른 모습으로 도래하지 않으려면 한국 불교계의 제주불교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수암 스님은 “제주에는 오랜 기간 무불시대가 이어져 왔지만 최근에는 제주의 무속인수가 감소하고 있다”면서 “(육지불교의 잣대로) 무속을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무속인의 영역을 불교가 흡수ㆍ수용해서 제주불교를 세련되게 발전시키는 것이 제주 불교인의 몫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성원 스님은 “제주불교에는 육지에 없는 ‘붓다클럽’이라는 신행단체가 있다”면서 “육지부의 거사림, 라이온스클럽 등과 비슷한 신행단체로 제주에만 6개 지부를 갖추고 재가자 독자적으로 신행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님은 “육지에 있을 때에는 재가자들이 스님 권위에 눌려 있다는 생각도 했다”면서 “제주에서는 (무속과 결합돼 있어서 그런지) 스님 없이도 독립적으로 신행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성원 스님은 “제주 사찰마다 신도회가 크지 않은 것도 모든 불자들이 여러 사찰에 걸쳐 있으면서, 스님 없이 신도간 자발적인 모임 갖고 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스님은 “약천사 불교대학도 잘 운영되는 것을 보면 (스님에 의존하지 않고) 재가자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제주불교의 특징”이라며 “제주불교의 좋은 문화가 확산돼 개인적 신앙을 바탕한 조직문화가 불교계에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불교학연구회는 29일 제주대 제주국제교류회관에서 ‘중국언어와 불교’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안재철 제주대 교수가 ‘불전 사용어휘의 중국언어학적 고찰’을, 김애라 제주대 박사가 ‘전등록에 나타난 장자용법에 관한 연구’를, 이병욱 고려대 외래강사가 ‘불교한문의 허사용례에 관한 연구’을, 임병권 충남대 교수가 ‘한역 불전 언어의 특징’을 발표했다.
조동섭 기자 | cetana@gmail.com
2010-01-29 오전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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