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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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속의 문화 읽기
1. 안성 청룡사(靑龍寺)
다섯 살 바우덕이가 땅에 금을 긋고 줄을 타던 청룡사

중부지방에 새벽부터 내린 폭설은 기상청 관측 이래 최대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세상엔 눈과 눈이 아닌 것 두 가지밖에 없었고, 그 세상으로 나온 순간 눈앞엔 가야만 하는 길이 바라만 보고 싶은 길이 되어 하얗게 휘날리고 있었다. 청룡사로 가는 길은 그렇게 나서야 했다.

안성 땅에 들어서서도 눈발은 여전했다. 서운산자락을 붙잡을 때 쯤 눈발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쉼 없이 내리는 눈발이 세상 풍경을 남김없이 지워가고 있을 때, 그 하얀 풍경 마지막에 청룡사가 남아 있었다. 바람이 흔들고 지나간 풍경 소리와 마당에 쓰러진 석탑의 그림자가 도량이 있음을 알려줬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서 운부대사와 장길산은 이곳에서 미륵의 세상을 꿈꿨다. 숨 막히던 시대에 숨죽여 살았던 그들이 꿈꿨던 미륵의 땅은 자동차를 끌고도 가기 힘든 곳이었다. 눈발이 잦아들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인 1265년에 명본 스님이 창건하여 대장암(大藏庵)이라고 부르다가, 공민왕 13년인 1364년에 나옹 스님이 중창하고 이름을 청룡사로 개칭했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절터를 찾아다니던 나옹 스님이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멀리 서운산이 눈 속에 서있다. 아득한 그 옛날 나옹 스님이 바라보던 청산과 창공은 스님에게 말없이, 티없이,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고 했고, 스님은 ‘말없이 살라하네’로 시작해서 ‘말없이 가라하네’로 끝나는 시를 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시었다.
하얀 마당 끝에 대웅전이 서있다. 균형미와 굴곡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대웅전은 보물(824호)이다. 청룡사에는 대웅전 외에도 명본 스님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삼층석탑과 청룡사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57호), 동종(보물11-4호), 청룡사감로탱(보물 제1302호) 등의 문화재가 더 있다.


청룡사가 있는 청룡리는 남사당의 마을이었다. 청룡사 위에 불당골이 그들의 마당이었고 청룡사 또한 그들의 마당이었다. 청룡사는 사당패의 그늘이었고 사당패는 그런 청룡사를 도우며 함께 살아왔다. 청룡사 입구에 있는 사적비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 불당골로 오르다보면 조선 남사당의 최초이자 마지막 여자 꼭두쇠였던 바우덕이 사당이 있다. 난전을 떠돌던 어린 바우덕이를 사당패가 거두고 다섯 살 바우덕이는 땅에 금을 긋고 줄을 타기 시작한다.
바람이 여닫는 사당 대문 뒤로 상모를 든 그녀의 동상이 브로마이드처럼 걸려있다.
바우덕이는 그 시대의 ‘스타’였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로 시작하는 바우덕이 노래가 당시를 말해주며, 소설 ‘장길산’에서는 ‘묘옥’이라는 여인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시인 김윤배는 그의 시 ‘여사당 바우덕이’에서 바우덕이의 일생을 시로 풀어 썼다. 타고난 미색과 총기로 사당패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던 그녀의 불꽃같은 삶과 숨 가빴던 상민들의 한을 노래하고 있다.


안성 난장 물화 많고 사람 많아
은근짜 다방모리 화랑유녀 웃음 질펀하고
거간꾼 장돌뱅이 싸움질로 날 저무는
흥청거리는 난장마당 가을걷이 끝낸 장마당
풍성한 인심 돋우어 펼치는 안성 청룡 남사당패 풍성한 놀이판…

뜬쇠 상쇠 바우덕이 신들린 쇠가락
상것들 얼쑤얼쑤 신명 부르고
뜬쇠 어름산이 바우덕이 시원스런 아니리 사설
상것들 응어리진 마음 풀어내리고
뜬쇠 덧뵈기쇠 바우덕이 불길 일으켜 타오르는 세상

바우덕이는 폐병에 걸려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청룡사 아래 골짜기에 그녀의 묘가 있다. 바우덕이가 눈을 감은 때도 겨울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땅이 파지지 않아 흙을 모아다 덮었다. 100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 그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보존회에서 묘비를 세웠다. 눈 덮인 그녀의 무덤 위로 겨울바람이 지나갔다.
안성시에서는 2001년도부터 해마다 조선 최초이자 최후의 여자 꼭두쇠 바우덕이를 기리고 남사당 문화를 세계적인 문화로 전승 발전시키고자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운부대사와 장길산이 꿈꿨던 미륵의 세상도 바우덕이가 일으켜 타오르던 세상도 다 지나간 세상이 되었다. 각자가 꿈꾸는 세상은 각자의 가슴 속에 있을 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까. 우리가 믿고 기다리고 있는 미륵불의 정토도 지금 각자의 가슴 속에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까. 내 가슴 속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지 생각하며 청룡사를 나섰다.

청룡사 가는 길에는 포도밭이 많다. 안성 포도마을이다. 포도마을을 지나면 바우덕이의 묘가 나오고 서운산이 보이는 입구에 시원한 청룡 저수지 있는데 여름엔 수상스키, 보트 등 여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바우덕이 사당 옆 골짜기에는 아늑한 카페도 하나 있다. 법당의 오래된 단청과 역사 깊은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도 사찰 여행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사찰을 지나간 이야기를 따라 ‘그 곳’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ㆍ사진=박재완 기자

청룡사 가는 길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339번 지방도(서운방면)로 11Km 쯤 가면 34번 국도와 만나는 산평 삼거리에서 진천쪽으로 좌회전 하여 2.2Km 정도가면 오른 쪽에 주유소, 왼쪽에 청룡저수지가 있는데 좌회전하여 저수지제방으로 부터 1.3Km 더 들어가면 청룡사다.
대중교통은 안성시에서 청룡사까지 군내버스 1일 13회운행, 30분 소요. 청룡리 버스정류장에서 200m.
글ㆍ사진=박재완 기자 | wanihollo@hanmail.net
2010-01-12 오후 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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