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망찬 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천만 불자와 국민 여러분께서 뜻하시는 모든 일이 원만히 성취되시길 부처님께 기원합니다.
2010년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해입니다. 일제 강점 100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4·19 민주혁명 50주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0.27법난 30주년은 잊지 못할 아픈 기억입니다. 그러나 아픈 기억의 또 한편에는 세계가 주목할 만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의 역사가 있어, 2010년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이 되는 해가 되었습니다.
짧은 세월 속에 다 담아내지 못할 영욕을 겪어야했던 우리의 지난 역사는 오늘날에도 쉽게 치유하지 못하는 대립과 갈등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구촌 전체를 보아도,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가고 있지만, 지구는 이상 기후와 온난화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세계 곳곳에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사적인 위기로 불리는 이러한 시대에 우주 만물이 하나이고 모두 평등하며, 공존 공생해야 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야말로 위기를 해결할 대안 사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종도들의 뜻을 받들어 대한불교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의 소임을 맡아 다시 한 번 한국불교의 새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먼저, 100여 년의 근현대사 속에서 한국불교, 그리고 조계종단이 역사의 한 주체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그 책임을 다하였는지 겸허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종단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혼란과 고통의 현장을 함께 겪고 보듬어야 할 종교 단체 본연의 역할을 다하였는지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난 시기 종단 내에서 벌어진 분규와 갈등, 운영의 미숙함으로 인해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국민과 불자 여러분들께 상처를 안기고 염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하여 깊은 참회를 드리며 과거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과 불자들의 기대를 담은 수많은 종도들의 원력으로 제33대 총무원장 선출 과정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여법하게 이루어졌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소임을 다하는 날까지 가슴 깊이 그 의미를 새길 것입니다.
저는 종정 예하의 교시를 받들고 종도들의 뜻을 모아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 하는 불교”를 제33대 총무원의 발원(發願)으로 삼았습니다. 소통과 화합은 종단 안으로는 출가와 재가, 교구와 문중, 지역과 중앙 사이의 소통과 화합을 이루며, 종단 밖으로는 우리 종단과 이웃 종단, 불교와 이웃 종교, 불교와 사회를 다 아우르는 뜻을 담았습니다. 그리하여 제33대 조계종은 부처님의 중도연기(中道緣起) 사상을 핵심으로 종단 안팎의 진보와 보수, 남과 북, 동과 서, 부자와 가난한 자를 다 아우르며 소통과 화합으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여 민족공동체를 복원코자 하며 나아가 인류 공동체의 소통과 화합도 지향합니다.
제33대 종단은 위의 발원을 이루기 위해 3대 종무 기조를 정하였습니다.
첫째, 수행종풍 선양입니다.
수행 종풍은 2천6백년 불교사와 1천7백년 한국불교의 빛나는 전통입니다. 저는 이를 기반으로 스님들이 수행과 전법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종단의 승가복지 제도를 완비하고 시행하는 데 역점을 두겠습니다. 아울러, 수행법의 체계화, 대중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둘째, 교육과 포교를 통한 불교중흥입니다.
승가교육과 포교의 과감한 변화를 추진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종단은 전통 교육에 대한 자부심으로 세계 불교계의 다양한 불교 교육과 수행 흐름에 바르게 조응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와 역사에 부응하고, 자비를 구현하는 승가 교육으로 개선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가칭 ‘승가교육진흥위원회’를 구성하여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사찰의 신도 교육과 조직화에 집중할 것입니다. 직할교구 사찰을 우선으로 포교와 신도 조직, 문화, 복지 활동을 평가하여 주지 인사고과제도를 시행하겠습니다. 또한, 대학생ㆍ청년 포교를 활성화하여 불자인재 양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또한, 한국불교의 총본산 조계사를 시민들과 함께 하는 열린 공간, 경복궁·광화문 광장·북촌·인사동·청계천 등 주변과 어우러지는 전통 역사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겠습니다.
셋째, 사회적 소통과 공동선 실현입니다.
불교와 사회의 소통 화합을 위하여 ‘사회 갈등 해소를 위한 화쟁(和諍)위원회’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진보와 보수, 노와 사, 남과 북, 정부와 NGO 등 각종 사회적 이견과 갈등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정신으로 화쟁(和諍)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종단 안의 소통을 위하여 종책모임 대표들로 ‘종단발전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또한, 사회의 각계 각층의 불자들을 네트워크화하여 소통하며, 불교 중흥에 참여하는 방안도 추진하겠습니다.
나아가, 종단과 종교의 벽을 넘어 사회 공동선 활동을 증진하겠습니다. 통일, 인권, 복지, 환경, 평화, 다문화 등의 과제는 종교와 이념의 벽을 넘어 공통된 가치입니다. 이러한 공동선 활동에 종단도 역할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이러한 3대 종무 기조를 중심으로 11대 핵심과제와 25개 주요과제를 선정하였습니다. 이 밖에 금년 11월에 열리는 G20국가 정상회의를 맞아 한국불교 전통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행사도 준비할 것이며, 초조대장경 1천년에 즈음한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등 여러 행사도 종단이 함께 해 나가겠습니다.
이미 많은 국민과 불자들이 우리 종단과 한국불교가 해야 할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를 실제로 실행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국민과 종도들의 여망을 받들고 역대 총무원장스님들의 뜻을 이어, 못다 한 과제를 과감히 실행하여 이루어내는 것이 제33대 총무원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33대 종단은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하는 불교"를 발원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저는 이 발원과 과제를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저의 임기가 끝나는 4년 뒤에 한국불교는 소통과 화합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시대에 조응하는 교육과 포교를 통하여 인류의 문명사적인 위기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나가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종단의 사부대중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기를 바랍니다.
경인년 새 해를 맞아 다시 한 번 이천만 불자와 국민 여러분의 평안과 행복을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54(2010)년 1월 12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慈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