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친하게 지내는 언니들과 함께 한 지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너무 이른 시각에 참석한 바람에 준비된 음식을 거하게 먹고도 정식 행사까지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다. 손님 접대를 위해 차려진 메뉴는 여느 출판기념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남다른 메뉴 한 가지가 눈길을 끌었다. 과메기다. 비린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과메기에는 눈길조차 가지 않는데, 언니들은 별미라며 난리다.
기인 신화백님이 나타난 건 그 무렵 즈음에서였다. 소위 ‘잘나가는’ 그림쟁이였던 그가 붓을 팽개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이제 그는 허름한 작업복에 손에 기름때를 묻히고 기계의 나사를 돌리는 노동자로 변신했다. 오랜만에 본 그가 “그동안 잘 놀았어”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세상은 잘 놀다 가면돼.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라서‥.”
그 ‘잘 노는’ 방법이 궁금해 비법을 물으니 신화백님은 대뜸 “공부 많이 해. 그런 다음에 물어봐”라고 한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내심 기대가 돼 예의 “공부를 언제까지 하고 물어보면 되는 건데요?”라고 물었다.
“즐거울 때까지‥.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좋아. 공부가 즐거우면 그때부터 공부가 즐거움이 되는 거잖아? 그럼 즐겁겠지? 그보다 즐거운 건 없어. 그걸로 끝이야. 인생이란 게 그렇게 가더라도 공부가 즐거우면 그걸로 만족인거야. 그러면 원치 않던 게 보너스로 와. 오는지 안 오는지는 공부한 다음에 봐봐. 내 장담할 테니‥.”
신화백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사이, 상위에 놓인 과메기가 벌써 네 접시 째 동이 나고 있었다.
“참 이상하네. 술이 술 같지가 않네. 취하지도 않고‥.”
김과 미역에 싼 과메기를 안주로 수십 점을 해치우며 홀짝홀짝 맥주잔을 비우던 미경언니가 원인을 알 수없는 ‘심심한’ 술맛에 트집을 잡는다. 이를 가만히 듣고 있을 신화백님이 아닌지라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바로 이어진다.
“술이 술 같지 않다는 건 나한테 뭔가 순수한 게 없어진 거야.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색깔이 바로 나오잖아. 내가 순수하면 술이든 물이든 들어가면 바로 나오지.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간장치고 소금치고 계속 치면서도 짠맛을 몰라. 짠맛을 모르는 것도 문제고 술맛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
멀쑥해진 미경언니가 소목 하는 신화백님의 친구에게 “저기 선생님은 말씀이 별로 없으시네. 과메기가 참 맛있게 됐는데 잡셔보세요”라며 은근히 화제를 돌린다.
“여기 이 친구한테 두 세 마디 들었으면 많이들은 거야. 아까 ‘안녕하세요’ 하고 몇 가지했잖아. 한 사람한테만 한 게 아니라 몇 사람한테 그랬어. 그걸 귀담아 들은 사람이 없었네. 나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는데‥. 나중에 갈 때 ‘다음에 또 봅시다’도 한마디 해줘.”
신화백님의 입담은 여전해 어디에서나 재치발랄하다. 이른바 ‘모르는 거 빼면 다 아는’ 그에게 과메기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니 그 유래를 설명한다. 과메기는 관목어에서 변형된 말로 ‘관통할 관’에 ‘눈목 자’를 써서 ‘눈을 관통해 말린 생선’의 총칭이라고 한다.
“눈을 꾀서 널었다고 해서 관목어인데, 이 관목이가 어떻게 하다 보니 과메기가 된 거야. 그러니까 정어리고 뭐고 눈이 뚫어 널었으면 과메기인거지. 옛날에는 정어리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젠 귀하다보니 꽁치로 하지. 겨울에 한두 달 정도 얼렸다 녹였다 해서 원래 구정쯤 돼야 먹는데, 요즘은 냉장고가 있어 얼었다 녹았다 한 맛이 별로 없어.”
‘과메기는 김보다는 미역에 싸먹어야 제 맛’이라는 원실언니의 추가 설명까지 보태져 과메기의 인기가 더욱 급상승이 되었다. 출판기념회는 아예 안중에도 없고 오늘의 주인공은 예정에도 없던 과메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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