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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다 할 수 없어서일까. 만장이 법구를 따라가고 있었다. 소리 없이 통곡하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람에 펄럭이고, 글자마다 글썽거리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눈길 위에 떨어질 듯 했다. 백양사는 온통 하얗고, 법구는 그 하얀 눈길을 걷고 있었다.
2003년 12월 19일 백양사. 입적하신 서옹 스님의 영결식이 끝나고 다비장까지 법구 이운을 하고 있었다.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라고 하나 법구를 따라 걷는 불자들의 마음속엔 오직 떠나간 이의 시간들로 가득했다. 무거운 발자국 위를 걷는 고개 숙인 얼굴들. 그 얼굴 위에서 슬픔의 문장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말로 떠나가는 이와 이야기를 하고, 입으로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을 부르며 스님을 따라가고 있었다. 말로는 따라갈 수 없어서 일까. 만장이 법구를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