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삶의 토대이며, ‘나’라고 집착하는 한 물건이다. 몸을 ‘영혼의 감옥’이라 간주한 플라톤, 개신교 금욕주의를 비롯해 불교의 부정관(不淨觀)에서도 몸은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됐다.
마음공부의 기반이라기보다 마음공부의 장애로써 정신의 순수함을 훼손하는 오염의 진원지로 취급되기도 했던 몸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밝은사람들(소장 박찬욱)은 12월 1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 ‘몸, 마음공부의 기반인가 장애인가’를 주제로 제8회 학술연찬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좌장인 김종욱 동국대 교수와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초기불교), 성태용 건국대 교수(대승불교ㆍ동양철학), 변희욱 서울대 교수(선불교),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서양철학), 우희종 서울대 교수(생물ㆍ면역학), 강신익 인제대 교수(동서의학)가 발표자로 참석했다.
#초기불교=정준영 교수는 주제발표 ‘몸, 놓아야 하는가 잡아야 하는가’에서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몸에 대한 불교의 기본적인 관점을 설명했다.
정 교수는 “초기불교에서 몸은 감각적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지혜를 일으키게 하는 통로였다”고 말했다.
붓다는 “육체로서의 몸은 ‘뼈로 만들어지고 피와 살로 덧칠해진 무상(無常)한 것’으로 몸에 대한 욕망을 버리는 것이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 설했다. 오온(五蘊)중 색(色, rupa)으로 구성된 몸은 물질 자체가 변괴성을 본질로 해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다.
정준영 교수는 “색으로서의 몸은 수(受, 느낌)를 낳고 ‘수’는 애(愛, 갈망)를 불러오며, ‘애’는 취(取, 집착)를 야기한다”면서 “몸을 전제로 한 느낌과 갈애는 집착과 그로 인한 고통을 야기하는데 매우 현저한 요소가 된다”고 지적했다.
몸에 대해 바르게 알고 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하는 것은 초기불교의 수행 특징이 됐다. 사념처 수행이 그 예.
정 교수는 “초기불교에서 몸은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그래서 놓아야하는 대상으로 이해했다”면서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몸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아 놓치지 않고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불교=변희욱 서울대 교수는 주제발표 ‘선, 몸으로 하라’를 통해 “몸이 수행과 공부 그 자체의 표현임을 설명했다. 변 교수가 주장하는 몸에 대한 선불교의 시각은 공부의 깊이가 몸의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변희욱 교수는 “조사들이 침묵으로 말하고 몸으로 말했다”면서 “언어 이전의 자리에 들어가는 방법이 선정”이라 강조했다.
선정의 대표적 형태는 좌선이지만, 몸의 형식을 우선시한다면 선이 아니게 된다.
혜능 스님이 “좌선의 핵심은 다리 꼬고 앉는 것이 아니라 양변(兩邊)을 떠나 본래면목을 보는 것”이라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변 교수는 “선은 본래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게 함이다. 본래성품 혹은 본래면목을 온전하게 구현하는 것이 선의 궁극적인 목표”라면서 “몸이 없이 내 본래면목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변희욱 교수는 “선도 악도 생각 않듯이 몸도 마음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공부가 깊어지면, 몸이 저절로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동양철학=성태용 건국대 교수는 주제발표 ‘수신과 양생’에서 “유학에서의 몸은 군자와 소인의 분기점이며, 도덕성 실현의 준거가 된다”고 말했다.
유가에서는 몸 수양이 마음 수양의 기반이지만, 도가에서는 몸에게 자연성을 돌려주는 것이 양생의 길이다.
성 교수는 “유가처럼 몸을 덕과 예의 차원에서 보건, 도가처럼 몸을 무위와 자연의 시각에서 대하건 중국철학은 몸을 통한 부지런한 연마속에서 마음닦음도 함께 이뤄짐을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서양철학=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는 ‘몸과 살, 그 신비하고 불투명한 토대’에서 “몸은 인간 활동과 인간의 온갖 바람들이 근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론적인 토대였다”면서 “인간의 모든 가치들이 발원하는 근원”이라 강조했다.
#동서의학=강신익 인제대 교수는 주제발표 ‘의학, 의술, 의덕’에서 몸이 마음까지도 포섭한다는 몸 일원론적인 입장에서 의학을 탐색했다.
강 교수는 “몸을 역동적 생성자로 보는 지혜가 의학이며, 항상 새로워지는 몸의 규범인 의덕(醫德)을 실천적 행위의 체계로 구현하는 것이 의술”이라 설명했다.
이어 강신익 교수는 “의(醫)는 몸에 대한 몸을 통한 몸의 공부”라며 “몸은 마음을 포함하므로 몸 공부는 마음공부이며, 몸을 통해 마음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삶의 치유”라 주장했다.
#생물ㆍ면역학=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주제발표 ‘창발현상으로 깨어있음의 몸’에서 “몸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진화발생생물학과 정신신경면역학의 입장에서 규명했다.
우 교수는 “깨달음은 몸과 마음을 떠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이며, 그 하나됨을 통해 그 하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돈오(頓悟)”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희종 교수는 “돈오의 바탕이 된 그 하나됨이 실체 없는 창발적 현상이듯, 이때의 돈오라는 깨어있음 역시 완전한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창발적 현상”이라 말했다.
#정리=좌장 김종욱 동국대 교수는 “몸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되 집착 않고 놓아야한다는 식으로 초기불교에서처럼 몸을 관찰하건, 선불교식으로 온몸으로 의심하건 몸은 기계적 실체가 아닌 복잡계적 창발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몸을 몸답게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마음공부의 튼튼한 기반”이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