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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 가을 풍경은 도량 구석구석에 조금씩 남아있다. 대웅전 옆에는 중생 닮은 석탑이 하나 서있는데 석탑 위로 가지를 뻗은 단풍나무에 마지막 단풍잎이 매달려 있고, 관음전 뒤로는 잎을 모두 떨어뜨린 감나무가 빽빽하게 감을 매달고 있다. 포행 나온 스님 곁으로 검둥개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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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문다. 부도 밭에 서서 저무는 하루를 본다. 바둑판의 공배를 메우듯 저녁의 그림자가 부도와 부도 사이를 메우고,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세상의 빈 곳을 어둠이 채워가기 시작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만난 내장사. 계절의 공배를 채우듯 산사의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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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법당 문살에 불빛이 번진다. 내년엔 제대로 내장사 단풍을 볼 수 있을까. 야윈 나뭇가지 위로 아쉬운 시선이 머물고, 도량을 채운 저녁 그림자 뒤로는 다른 계절의 기척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