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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비, '수행복지비'로 명칭변경
전국선원대표자회의서 결의, 신룡 스님 "복지비 성격 강해"



실상사 및 백양사 야단법석 등에서 안거 해제 후 수좌들에게 지급하는 해제비가 오히려 수행정신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수좌회에서 ‘해제비’를 ‘수행복지비’로 바꾸는데 결의했다. 선방 스님들의 복지를 위한 측면을 강조하고 차후 종단 차원의 수행복지체제를 확립할 것을 표명한 것이다.

백담사 무금선원장 신룡 스님은 동안거 결제일인 12월 1일 수좌회의 결의 내용이 담긴 문건을 배포하며 “‘해제비’는 해제 이후 교통비, 병원비 등 생활비와 품위유지비로 쓰이며 더 나가 노후 대비 등의 실질적인 복지비 성격을 같이 띠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문건은 올 하안거 해제 시 제방 40여개 선원 73명의 대표 스님들이 모인 전국선원대표자 회의에서 결의된 것”이라고 밝혔다.

수좌회는 결의 문건을 통해 “ 수좌가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지 대비책인 탁발 등이 금지된 상황에서 대중공양금 자체를 폐단이라고 여겨 계속 비판만 한다면 그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며 “수행승들의 복지정책을 수립해 더불어서 함께 사는 승가화합체의 살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결의문 전문이다.




해제비를 수행복지비로 명칭을 바꾸게 된 이유


그동안 선원에 대해서는 대내외적으로 여러 비판이 있어왔다. 일례로 좋은 스승, 도반보다는 현실적인 수용, 편리, 해제비 등에 의해 도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그 중의 하나이다. 또 결제 중 지도해 주시는 선지식도 잘 안 계시며 선원의 중판 정도만 되어도 ‘대중공양’ 부담 때문에 정진에 방해된다는 점, 나아가서는 해외여행 등으로 수좌의 청빈치 못한 점 등을 지적받아왔다. 그러나 수좌 입장에서 그러한 문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일방적으로 선원 쪽에서만 책임있는 것으로 호도할 문제는 아니다.

‘해제비’란 이름만 그렇게 쓸 뿐, 해제 때의 교통비나 개인 생활용품, 병원비 등 생활비와 품위유지비로서만이 아니라 장래의 병고(病苦)나 노후(老後) 대비 등의 실질적인 복지비 성격을 같이 띄고 있다.
한편 결제 때의 ‘대중공양금’이란 옛적 농촌에서 농번기 때 서로 협력해 공동작업을 하기 위한 조직인 ‘두레’의 성격과도 비슷하며, 이러한 공양금의 대부분은 도반(道伴) 스님이나 신도가 가지고 오는 것인데 이제 초참(初參) 스님들은 공양 낼 만한 무슨 반연이 있겠는가? 거개가 중판 이상 스님들의 화주(化主)로 들어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열대여섯 군데의 선원 해제비를 대략 살펴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비구니 선원과 봉암사 등은 30~50만원 가량이었고, 비교적 많은 곳도 두어군데 있었으나, 평균해서 200만원 남짓 됐다.
한 해에 두 번 안거에 들어가니 한 달에 10~30만원 가량이었고(대중공양 부담 등의 폐해를 없애고 순수하게 정진에만 매진시키기 위해 사중에서 해제비를 일괄 지급하는 충주 금봉산, 봉화 문수산, 함양 지리산, 그리고 선원의 특성상 대중공양 여건이 어려운 강원도 설악산 등 몇 몇 곳의 선원 등은 100만원 또는 그 이상의 사중 보조비를 실시하고 있었다.)
해당 本末寺에서 관례로 들어오는 것도 있으나 그것까지 감안해도 한 스님 당 근 100만원 이상(공양금 부담 없는 초참 스님들을 제외하면 200만원 가까이) 대중공양금으로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사십이장경>에 무심도인에게 올리는 공양이 가장 값진 것이라는 말씀이 있기는 하나 상당수의 스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듯이 시정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예전에 정혜사 만공 스님 회상에서는 결제 전 자기 먹을 식량 등을 탁발해 오는 것이 관례다시피 했듯이 수좌가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지 대비책인 탁발도 종단에서 금지한 마당에, 서서히 보완해 갈 생각도 없이 대중공양금 자체를 폐단이라고 여겨 계속 비판만 한다면 그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한 일은 못 될 것이다.

실상 다 같이 살펴야 될 부분은 따로 있다. 현재 수선안거라도 하고 있는 동안에야 괜찮지만 다년간 수좌로 있던 스님 중의 상당수는 건강 등의 문제로 대중 처소에 나오지 못하고 일부는 주지 스님으로 또는 본말사 대중으로 있게 되며, 그 외에 옛 스님의 가풍따라 토골에서 홀로 수행하는 스님들도 계시나 병들어 계신 스님의 경우는 문중이나 신도 도움없이는 종단적인 복지대책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 중 하나이다.
불교신문(2009년 3월 18일, 25일자)에서 ‘스님 건강관리 현주소와 대책’ 이라는 타이틀로 2회 연재하며 다룬 내용에 의하면, 다른 종교단체들은 성직자 건강 문제를 중앙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잇는 것과 달리 조계종은 종단과 대부분의 본사가 모두 손을 놓고 잇어서 스님들의 건강에 대한 관리가 방치돼 있는 실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스님들 중에서도 잦은 이동으로 거처가 일정하지 않은 선원 수좌 스님들은 건강보험공단의 정기검진 혜택 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소임이 없는 노스님들이나 거주할 사찰이 마땅치 않은 비구니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특히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지난해 실천승가회의 연구소가 개최한 노후복지 세미나에서는 스님들의 건강상태가 대체로 좋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고, 병원비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종단과 본사가 공동으로 부담해 줄 것을 요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처님께서도 몸이 불편 하실 때는 제자인 아난에게 여러 가지 부탁도 하시고 병간호하는 공덕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부분이 경전에 나오거니와, 만일 아직 자립능력이 없는 사미로서 은사 스님께서 돌아가셨더나 또는 수좌로만 살아서 재정 능력이 없는데 병이 들었으면 누가 담당해 줄 것인가? 행자 때부터 법으로서가 아니라 은사 될 스님의 장래성(?)이 있나 없나를 빨리 간파하고 은사 스님을 선택해 간다는 이런 풍토라면, 만일 진정 이러한 경향으로 흘러간다면 문중과 재정 능력도 없는 수좌는 상좌도 들이지 못할 것이고 또한 그러한 종단의 미래는 어떠한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대만의 불광산사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려니와 창건주인 성운선사사 포교에 있어서 제일 먼저 주력한 부분은 교육과 더불어 병원 등의 복지에 대한 일이라고 한다.
자선원(慈善院)이라는 기구를 중앙에 두고 대내외적인 교육, 의료, 복지에 관한 일을 광범위하게 시행할 때는 문중 승려일 경우 전적으로 책임져 주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불광산 문중수첩> 중 ‘의료방법’ 150쪽에는 “제1조: 본산 문중의 건강을 살피고 보호하기 위해 본 방법을 정한다....제4조: 정신, 신체 기관이나 기능이 균형을 잃거나 전염병 또는 기타 악질에 걸렷을 때, 질병을 숨겨 치료를 피하면 안되며 가능한 빨리 전등회에 보고해 진찰을 받아야 한다....제8조:의료비용청구원칙 1. 본산 문중의 건강보험 및 의료비용 청구 사항은 전등회에서 총괄적으로 처리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얼마전 종단에서는 수행 종풍 진작을 위한 <대중결계와 포살, 갈마> 시행안을 종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그 목적에 대해 “수행종풍을 진작해 결계의 기초범주가 돼야할 교구를 중심으로 교구자치제를 활성화해 승가의 공의전통을 회복하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종단에서 이왕에 수행과 복지를 아우를 수 있는 전담기구를 신설했고 또 결계의 중심이 되는 각 교구본사가 있으니, 이제 본사와 각 말사는 유기적인 연계와 협력 속에서 각 교구본사와 소속된 수행승들의 복지정책을 수립해 더불어서 함께 사는 승가화합체의 살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것은 단순한 이상만은 아니다. 이미 경기도의 모 교구 본사에서는 기왕의 선원을 복원한 이십여 년 동안 소속 말사에서의 대중공양을 자발적으로 유도해 ‘대중공양금’ 부담 없이도 해제비가 원만히 충당되는 곳으로 제방 선원에 이미 인정받고 있고, 몇 년 전부터는 본사에 열 개 가량의 방을 마련해 해당 본사의 승랍 30년 이상 수행승(修行僧)들의 노후 복지 차원에서 각 방과 함께 매달 소정의 복지금을 배려해 오고 있다. 그리고 그 복지의 차원을 승랍 25년에서 20년까지의 수행승으로 서서히 확대하고 있으며, 그 말사(末寺) 중 한 곳에 제2의 노후복지 도량을 선정해 이미 불사(佛事)의 초기 단계에 들어가 있다. 물론 해당 본사 소속의 각 말사 분담금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으나 이에 대한 부작용이 가시화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판ㆍ사판의 구별 없이 우리는 다 같은 수행자라는 공감대였다. 현 본사 중심제의 승가 공동체가 현실적 대안으로 정착되어감에는 법의 정신에 따라 가능한 한 평등의 정신이 시행된다는 전제하에 해당 본사 각 문중 간의 원만한 화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란 분위기 속에서 本寺 주지 선거 때도 오랜 선승(禪僧) 출신의 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하게 된 것이다.
우리 종단도 근 반세기의 정화 불사와 1994년 개혁 종단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물질적, 제도적 변화와 발전이 있어 왔다. 이제는 간난(艱難) 속에서도 전통을 고수해 오고 있는 선원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또한 그 존재 자체가 종단의 정체성(正體性)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국 각 선원에서 묵묵히 苦行하는 수행승들이 老後나 病苦 등의 불안 없이 품위 있는 安居가 가능하게끔, 복지 부문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확립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해인사처럼 소속 본사 스님들이 너무 많거나 또는 재정적으로 취약한 본사도 있기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제도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제도가 개선되고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청정 화합의 승단에 시금석이 될 것이며, 선거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도 없앨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노후를 염려해 개인 토굴을 마련하려 하는 등의 수행 외적인 일들도 줄어들 것이고, 밖의 행정 일을 보다가도 언제든 부담 없이 고향인 선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승단(僧團)의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해제비가 너무 많아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시골에 토굴도 장만하고 해외여행도 가는데 복지제도까지 정착되면 그야말로 대책 없는 물량 주의로 흐를 것 아니냐는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이미 기기암 같은 곳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해제비가 모아졌을 때는 아픈 스님이나 다른 어려운 선원에 쓰는 것으로 내규(內規)에 정해 놓았거니와, 동체대비심이라는 큰 물줄기만 잡아준다면 苦行으로 선원을 지켜 온 선조사(先祖師) 스님들을 생각해서라도 現 선원들이 그 정도의 자정(自淨) 능력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의료복지에 관해서는 종립 동국대학병원만이 아니라도 신심과 원력을 갖춘 병원, 한의원 등 여러 계층의 신도들도 많이 있을 것이므로 다방면에서 긍정적인 연대도 가능할 것이다.
노덕현 기자 | Dhavala@buddhapia.com
2009-12-02 오후 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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