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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다윈의 진화론은 서구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의 창조론을 뒤집은 다윈의 학설은 2500여 년 전 브라만ㆍ사문과 달리 독자적인 연기론을 설했던 붓다와도 닮아 보인다.
차이라면 진화론으로 대변되는 과학과 종교인 창조론이 여전히 갈등과 소통을 거듭하고 있지만, 불교와 과학의 소통은 활발하다는 점이랄까?
연기론은 불교의 존재론ㆍ발생론 등 불교의 가장 중요한 교의이다. 물리학의 양자역학은 화엄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등을 통해 불교의 존재론과 비교된다. 발생론으로의 연기론인 12연기는 진화론과 비교되며 불교의 생태적 사고, 생물학적 사고의 근원을 설명해 왔다.
이런 가운데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연기론과 진화론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불교진흥원(이사장 민병천)과 인터넷 불교언론 미디어붓다(대표 이학종)는 11월 27일 마포 다보빌딩에서 ‘다윈과 불교의 만남’을 주제로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가 ‘진화론의 철학’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가 ‘진화론와 기독교, 그리고 그 관계가 불교에 말하는 것’을, △안성두 서울대 교수가 ‘진화론의 불교적 함의’를,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불교와 다위니즘-그 흥미로운 수렴’을 각각 주제발표했다. 토론자로는 김성철 동국대 교수와 우희종 서울대 교수가 참석했다.
이한구 교수는 주제발표 ‘진화론의 철학’에서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학의 영역에서 진화론을 조명했다.
이 교수는 “진화론의 ‘생명일원주의(生命一元主義)’가 불교의 생명평등주의와 일치한다”면서 “계속 이어지는 진화론적 인식이론은 보다 높은 진리를 향해 그 관점이 상승하는 불교의 진속이제설과 유사하다. 또, 불살생계와 자비로 대표되는 불교의 불교윤리는 진화론적 이성윤리를 포섭하는 생명윤리의 최고봉”이라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진화론은 반본질주의(anti-essentialism), 비결정론(indeterminism), 무목적론(ateleology)을 기본 특성으로 해 불교와 상당한 유사한 논리체계를 갖고 있는 이론”이라 말했다.
홍성욱 교수는 지난 200여 년간 끊임없이 반목해온 서구에서의 진화론과 기독교의 관계를 고찰과 진화론과 불교의 유사성에 관한 선행 연구를 소개했다.
홍 교수는 “흔히 불교는 과학적 종교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는 창조주의 권능과 과학 사이에서 빚어지는 마찰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불교에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윤회설과 연기설은 종의 경계가 시간을 두고 변하고 모든 종들을 ‘생명이 나무’로 연결된 존재로 보는 진화론과의 형식적인 유사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홍성욱 교수는 “서구에서는 불전과 19세기 제창된 다윈의 진화론 사이의 개념이나 텍스트 문맥상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 왔다”면서 “최근에는 폴 에크만이 다윈의 작업을 연구하다가 그의 견해가 티베트 불교와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진화론과 불교의 생명론이 비슷하지만, ‘업의 인과율’, ‘동정심, 자비에 관한 관심’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홍 교수는 “진화론과 불교의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21세기에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큰 문제에 대한 고통스러운 대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성두 교수는 불교의 교학적 입장이 진화론과 근본입장과 양립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고찰했다.
안 교수는 “연기설 등 불교는 진화론과 상통하는 점이 많지만 생명의 본질을 식(識)으로 본다는 점, 업설과 윤회설, 삼계설 등을 보면 현대적 의미의 과학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진화론은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해 해명하지 못한다. 또, 생물학적 본성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그 가능성을 설명하는데 한계를 갖는 점이 불교와 차별된다”고 강조했다.
안성두 교수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진화론과 불교는 기본적으로 양립 가능하다”며 “‘진화’라는 개념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불교의 무상관과 상통하고, 모든 것을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관찰하는 불교의 핵심적인 정신적 태도와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최재천 교수는 “불교의 교설과 다윈주의의 유사성은 엄청나게 많이 끌어낼 수 있지만, 그런 유사성은 모두 표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불교 무아론의 반유물론적 본질은 사후 자아 존속의 문제에 이르러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어 최 교수는 “과학과 종교가 하나로 융합할 수는 없어도 충분히 통섭(統攝)할 수는 있다”면서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생명은 언뜻 섬뜩하고 허무해 보이지만 그를 통해 스스로가 철저하게 겸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자연의 일부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기본 교설이 말하는 ‘무상함(anicca)’과 무아의 ‘공(空)’의 개념에 도달하는 길일 것”이라 강조했다.
토론에서 김성철 교수는 “현대의 진화론을 비롯한 철학 종교 등과 불교를 비교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윤리 문제”라면서 “현대의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발휘되는 이타심’은 ‘종(種) 내에 국한한 이타심’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