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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3년 기축년 동안거 결제날을 하루 앞둔 11월 30일.
등성이마다 소복히 쌓인 설악산(雪嶽山)의 초설(初雪)과 백담(百潭)계곡이 백담(白潭) 절경을 이룬 가운데 눈 푸른 납자들이 강원도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 안거에 들어갔다.
‘시간이 멈춰 번뇌조차 멈춘 곳’ 무금 선원은 1998년 문을 연 이래 설악산에서 선지를 날리고 있다. 무금선원은 행자교육 이후 사미 스님들이 선 기초를 다지는 ‘기본선원’과 법랍높은 구참 스님들이 폐문정진(閉門精進)하는 ‘무문관(無門關)’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 동안거에는 무문관 11명의 구참수좌를 비롯한 50명의 납자들이 방부를 들였다.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는 선원이지만 결제 전날, 선원장 신룡 스님은 교계 기자단에게 이례적으로 문호를 열었다. 수행의 공덕은 회향에 있기에 대중들을 먼저 살피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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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한데 모여 3개월간 수행하는 일반 선원과 달리 1~2평에 불과한 공간에서 화두타파까지 묵언수행하는 무문관. 무문관은 매일 오전 한번 밥상이 겨우 지날 정도 크기의 ‘공양구’(供養口)로 공양주가 건강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수행처다. 무문관 3채의 각 건물에는 결제 전 정진 중인 스님들이 있음에도 고요했다. 인기척이 없는 방에는 최소 3개월에서 3년 이상 동안 홀로 정진해 온 스님들이 생사일여의 경지를 넘나들고 있었다. 화두타파의 그 순간까지 기타의 일체행위가 배제된 치열한 자기싸움. 무문관은 무문(無文)과 무문(無聞)으로 무문(無紊)을 얻는 결사정진의 현장이었다.
방 한켠에 마련한 자리는 선원장 신룡 스님을 비롯해 결제를 기해 무문정진에 들어가는 야운 스님, 관명 스님, 동선 스님, 지수 스님이 참석했다. 법주사 선원장을 내려놓고 오신 스님부터 50안거 이상 성만한 스님까지 구참 스님들 모두 스스로를 대중 스님으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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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 스님은 이날 자리에서 “무문관의 고행 속에도 목숨 바쳐 법등을 이어가는 것은 선원 수좌 스님들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무금선원 용맹정진 등 기본선원 주요일정을 제외하고 매안거마다 함께 폐문정진하고 있는 선원장 스님이 ‘고행’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무문관 수행은 까다로운 것이었다. 감옥 독방 생활처럼 몸과 마음 모두 철저한 자기관리를 요하기 때문이다.
“하안거에 무문관에 든 이후 미진함을 느껴 다시 찾았다”는 관명 스님은 “대중선방과 달리 무문관은 시비와 대화가 끊어진 곳으로 움직임마저 힘들다. 시비가 끊어진 자리에서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하게된다”고 말했다.
무문관에 세 번 든 지수 스님(무문관 한주)은 이러한 생활을 “수행자로서 최고의 삶이자, 대장부로서도 한번쯤 도전해봐야 할 삶”이라고 표현했다. 스님은 “일반선원에서는 대중 생활에 할애 되는 시간이 많은데 무문관에서는 24시간을 자신이 온전히 주인공으로 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님은 “처음에 무문관에 들어가면 폐쇄 공포증이나 환청 등에 시달리는데 스스로가 규칙적으로 생활을 꾸려가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며 “뼛 속 사무치는 고통없이 어찌 코끝을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겠는가”는 선문답으로 느낀 바를 표현했다.
이 자리에서는 스님들의 수행담과 함께 수행풍도 진작을 위한 자성과 애정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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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 스님(백담사 주지)은 “무문관 첫 결제 당시 해제 이후 스님들이 초췌하실 것이라 망상을 했는데, 막상 문을 여는 스님들의 얼굴이 맑고 밝은 모습이라 감동을 받았다”며 “무문관 안에서 스스로 엄청난 자기 절제가 있지 않나싶다. 이 것은 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는 세속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지 않나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신룡 스님은 “참선과 명상 문화의 사회저변 확대와 ‘웰빙’과 ‘레저’ 열풍 이면에 몸의 안위를 다 누리면서 마음의 안위까지 구하려는 이기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선문화의 확산은 자칫 정신적 욕망의 갈증만을 더욱 촉발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님은 이어 이러한 의미에서 수행자들이 더욱 중생을 위한 올곧은 수행을 통해 중생들에게 다시 회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님은 “자살율, 이혼율 1위 등의 현실, 삶의 정체성을 잃고 혼돈빠진 현대인을 대신해 수좌들은 정말 ‘인간의 목적이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가야할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들고 헌신해야 한다”며 “절박함 속에서도 비우고 끊는 안거 정신을 현대인들에게 펼칠 때 진정한 자유의 삶을 사는 계기를 마련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안거 해제 이후 양로원과 병원 등에서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집짓는 일을 돕는 등 삶의 다양성 체험하는 만행을 통해 이러한 화두를 진정으로 참구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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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 스님은 선원장으로서 이날 선원 수행복지비(해제비) 지급 등과 관련된 야단법석 등의 비판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스님은 “정화 이후 승려복지에 대한 체제가 갖춰지지 않는 현실에서 해제비는 선방 스님들이 의류와 의약품 등 필수품을 마련하는 복지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며 “일부 사안으로 선원이 물질적인 것에 치우쳤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을 뒷받침하는 체계를 갖추는데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님은 끝으로 기본선원 일정을 소개하며 사미 스님들을 비롯한 종단 젊은 스님들의 발심의 원력을 교육과 수행으로 잘 이끄는 것이야 말로 한국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출가에서 교육과 수행이 하나다’고 했습니다. 여기 기본선원에 들어온 사미 스님들을 보며 많이 느끼지만 요즘 스님들 정말 혀깨물고 공부합니다. 목숨 바쳐서라도 수행전통의 법등을 잇는 것은 우리 스님들의 할 일 입니다.”
무금선원을 나서는 그 길. 치열한 ‘무문관’ 수행의 전통과 젊은 스님들의 발심의 현장을 함께 간직한 이 곳에서 중흥의 서광이 비쳐졌다.
무문관 앞에 놓인 한 시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