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공개된 <친일인명사전>이 한국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11월 8일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에는 총 4389명이 수록된 가운데 불교계 인사 54명도 포함됐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되고있는 인사는 이종욱(지암)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다. 그는 월정사 승려로 있을 때인 1919년 만세 시위에 참가했고 3·1 운동의 성과로 한성임시정부가 세워지자 강원도 대표로 참가했으며, 상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도 강원도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1920년대 상해에서 국내로 돌아와 조선총독부가 임명하는 월정사 주지가 되었으며 불교계 대표 격인 종회(宗會)의 의장으로도 선출되었다.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 이후에는 기원법회나 시국강연회를 열어 일제를 적극 지지했으며 <신불교> 등의 잡지에 친일 논설을 쓰기도 했다.
한국불교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김광식 교수는 “지암 스님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따져 볼 필요가 있다”며 “다른 분야에서는 후손들이 들고 일어서고 있지만 불교계는 후손이 없어 나서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불교계가 친일과 항일 모두에 관심이 없는 것 반성하고 이번 기회에 학문적으로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윤경로 위원장은 “역사는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도 그 중 한가지다”며 “국가가 외면한 미해결 과제를 시민들이 직접 나서 역사정의 실현의 단서를 열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 있는 성과”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최초로 공개됨으로써 퇴행적 역사를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입장이다.
불교계 일부에서는 그의 이름이 친일인사로 등재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편찬위원들은 친일행적 자료가 명확히 남아 있기 때문에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교계 친일인사 중에는 지암 스님과 같이 애국자로 인정돼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로 박영희 스님, 차상명 스님, 허영호 스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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