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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여름에 왔을 때 보았던 팔상전 단풍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그 땐 푸른 잎이어서 가을에 다시 오게 되면 붉은 모습을 찍어갈 생각이었는데, 돌담 위로 보여야 할 단풍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마당으로 들어가 보니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멀리 법당 어간에 서있던 다람쥐 한 마리가 내게 눈을 맞추고, 그루터기 위로는 낙엽이 떨어져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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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를 따라 팔상전 마당을 나선다. 스님도 어디론가 바삐 간다. 꽃길을 돌아 선원으로, 선원을 나와 다시 꽃길로, 돌문을 지나 대적전으로, 대적전에서 다시 진해당으로 간다. 팔상전 단풍나무를 묻고 싶었는데 묻지 않기로 했다.
해가 많이 짧아진 것 같다. 도량엔 순식간에 저녁이 들어차고, 들어찬 저녁은 산문을 닫기 시작한다. 돌담 밑의 마른 잎들, 대적전 배롱나무, 붉어지기 시작한 단풍나무, 별처럼 매달린 감들, 어두워진 오솔길, 외로워 보이던 당간지주, 다시 불어오는 가을바람. 그리고 볼 수 없었던 팔상전 단풍나무. 가을에 와야 할 갑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