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2.1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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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운 것 세상에 회향해요”
데스크 초대석 -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히말라야는 왜 나를 살려서 돌려보내 준 것일까?”

결국 이 질문 하나였다. 1988년 에베레스트(8850m)를 오른 이후 2007년 5월 로체샤르(8400m)까지 8000m 이상의 16좌를 모두 오른 뒤에 남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질문은 새로운 삶의 행로를 보여주었다.
눈보라와 강풍 앞에서 목숨마저 던지고 모든 것을 ‘산’ 혹은 ‘신’의 뜻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길에 즐겁게 인생을 던진 산사나이 엄홍길.

그의 이름은 이제 산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TV광고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의 얼굴은 산악인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다. 8000m 이상 16좌를 다 올랐다는 엄청난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기록은 산악인 엄홍길의 성취일 뿐이고 기록 이후의 삶이 그를 진정한 산사나이로 만들고 있다.

장충동 파라다이스 빌딩 1층에 자리한 ‘엄홍길 휴먼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안에 읽은 그의 책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2008, 마음의 숲)의 서문은 그의 진심을 잘 보여준다.



“히말라야는 왜 나를 살려서 돌려보내 준 것일까? 문득 세상으로 나가 무엇인가를 하라고 돌려보내 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트만두를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그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받은 깊은 은혜를 산으로 되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히말라야의 산들과 신이 나를 살려서 돌려보낸 이유였습니다. 나는 지금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신체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 지적 장애인들, 그리고 예기치 않은 화재로 온 놈에 화상을 입은 어린이와도 산에 올랐습니다. 서른여덟 번의 히말라야 산행에서 수도 없이 겪은 실패, 좌절, 실의, 도전, 희망들이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전이자 엄청난 변화이며 그것에서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엄홍길의 휴먼재단’ 통해 오지 어린이 지원활동
청소년들에 ‘희망’ 주는 각종 프로그램도 운영
“산은 하심과 상생의 지혜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


작년 휴먼재단을 설립하면서 펴낸 이 책에는 히말라야를 비롯한 큰 산들이 준 교훈을 알알이 담고 있다. 강연과 각종 행사 참석 등으로 늘 분주한 그는 ‘산이 가르쳐 준 교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겸손 순응 초심 평상심 무욕 등의 단어들을 열거했다.

“산과 하나 되지 않으면 산에 오를 수 없습니다. 산과 하나 된다는 것은 포용심과 협동심 그리고 하심과 평상심을 갖춘다는 것이지요. 자만과 정복심 그리고 화를 내고 울분을 토하는 마음으로는 산에 오를 수 없습니다. 산이 결코 용납하지 않거든요. 히말라야를 처음 도전할 때 저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실패했고요.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욕심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거기서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고봉 16좌를 다 오른 것은 몇 가지의 조건만 충족되어서 가능했던 게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하고 산이 허락해야 하는 것이다. 산은 문명세상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산은 이미 존재 그 자체로서 커다란 교훈입니다. 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순일한 삶을 보면서 문명의 혜택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추해 보기도 합니다. 문명이 나쁘다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지만, 사람들이 문명사회에 적응하면서 잃어버린 본래의 순수는 확실히 느껴집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엷어지면서 자연을 정복하기에 안간 힘을 씁니다. 그 대가로 엄청난 재해를 입으면서 말입니다. 지금 히말라야를 비롯한 큰 산들은 오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고 탐욕이 닿는 순간 자연은 망가집니다.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인정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엄홍길 휴먼재단(이하 재단)’이다. 재단은 사람과자연의 상생을 근원적으로 추구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과 사람의 공생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히말라야에 깃들어 살면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를 세워주고 병마로부터 보호해 주는 일이다. 지난 봄 네팔의 오지마을 팡보체에 초등학교를 짓기 시작해 기공식을 가졌다.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내년 봄에 완공된다.

재단은 네팔의 14개 주에 최소한 1주에 하나의 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수도인 카트만두에는 두 개의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학교를 짓고 교보재를 지원하고 교사와 의료시설 학용품 장학금등 포괄적인관리와 지원을 해 나갈 방침이다.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재단은 또 ‘희망’을 주제로 하는 상설 프로그램들도 가동한다. ‘엄홍길의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함께 산을 오르며 산의 교훈을 들려주고 희망을 전한다. 일대일 멘토링 과 청소년들과오지 탐사 프로그램 등도 희망을 전하는 엄홍길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제 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산을 오르는 일보다 산에서 배운 것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재단을 모태로 해서 산에서 얻은 지혜를 사회에 회향하는 길은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 여러 사람이 동참 할수록 더 값진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도봉산 계곡 절집이 많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자연스럽게 절물이 들었다는 그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히말라야에서 배운 것들을 세상에 회향하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어디 내 것이 있나요? 산은 더욱 더욱 버리며 살라고 가르치는데 사람들은 더욱더욱 채우려고 사는 것 같아요. 산을 내려와서 보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산에 오르면 그곳에는 산이 없습니다. 나는 산의 일부이고 산의 나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산에서 경험하고 깨친 것들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 회향되니 함께 산을 오르다 먼저 간 동지들에게도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늘 그들을 호명하며 최선을 다 해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던 그가 시계를 보았다.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안해요. 제가 좀 바빠서...”
“아닙니다. 대장님이 바빠야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걸요.”

호탕하게 웃는 그의 얼굴, 다름 아닌 히말라야였다.
글=임연태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mian1@hanmail.net”
2009-10-21 오전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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