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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용감했다. 한 사람이 평생 단 한번 오르기도 힘든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에서 3년 연속 수상한 부부가 있다. 한 작품을 함께 작업한 게 아니라, 각각 지장보살과 석가모니부처님의 설법을 독특한 화법과 색채로 각자의 화폭에 담아냈다. 중요무형문화재 118호 불화장 커플, 오기웅(38), 배수정(30) 부부가 바로 그들이다.
불화장이자 단청 문화재 수리 기술자인 오기웅 씨는 “불화는 제 아무리 빼어난 실력으로 그렸다고 해도 그 속에 정성과 간절한 신심으로 그려야 비로소 성스러운 부처님의 모습이 깃든다는 것을 알기에 점점 많은 작품을 거쳐 갈수록 어렵고 힘들어 진다”며 스스로를 낮췄지만, 그의 이번 수상작 <지장보살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별함이 숨어있다.
화학안료는 단 한 방울도 섞지 않고, 오직 천연재료만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했다. 얼굴색과 피부, 연꽃문양은 수정을 썼고, 탱화 전반의 색이 고운 까닭은 진주로 빛을 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땅 속 암반에서 축출한 천연 석채만을 사용해, 화학안료를 조악하게 섞어 색을 내지 않고도, 수백 년간 변함없을 영원의 색으로 <지장보살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런 옹고집 불화장을 남편으로 둔 아내 배수정 씨 또한 만만치 않다. 대학 때 한국화를 전공하던 중 불화의 매력에 심취해 전문적으로 배웠고, 불화장을 이수한 고수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 속에는 현대적인 색채와 지극한 신심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성스러움, 한국화의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기법이 공존한다. 이번에 수상한 <석가모니 설법도>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예경하는 여러 제자들을 담았는데 어떤 이는 합장을 한 듯하나 춤을 추고,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조는 이도 보인다.
배수정 씨는 “불화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멍하니 살아가던 내 삶에 경종을 울렸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심어주었다”며 “그 후 평생 부처님을 그리면서 살면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불화는 종교미술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마음수양에 너무 좋아, 불자 누구나 취미로 삼아 집집마다 본인이 그린 탱화 한점씩을 걸어두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기웅 씨의 붓끝을 거쳐 간 사찰만 무려 100여 곳이 넘는다. 최근에는 부산 홍법사 새 대웅보전의 전각 등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 배수정 씨와 함께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 탱화강사로 활약했다. 지금은 가덕도의 한 사찰 후불탱화를 조성하고 있다. 수많은 탱화를 그리고 단청을 조성해왔지만, 쉽고 빨리 해내려 허투루 임한 적은 없다.
“이제는 보편화된 화학안료는 석채에 비해 400배가량 저렴하고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십수 년도 못가 색이 바랩니다. 하지만 석채를 사용하면 2~300년은 거뜬히 변함이 없어요. 한번 조성하면 수백, 수천 년간 보존될 탱화인데 싸다고 아무거나 쓰면 되나요. 좋은 재료를 바탕으로 그리는 사람의 신심과 한 획 한 획 정성이 들어가야겠지요.”
7년 전 탱화의 매력에 빠졌던 배수정 씨에게 불화를 가르쳐주던 선생님 오기웅 씨는 이제 남편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라던 부처님을 그리는 지금, 이들 불화장 부부는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문의 (055) 905-8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