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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탁!” 선생님이 판서를 마치고 분필을 내려놓자 학구열에 불타는 몇몇 학생들이 교탁 아래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필기하기 시작했다. 수능을 한달여 앞둔 고3 수험생의 족집게수업보다 훨씬 뜨거운 열기의 이곳은, 바로 삼광사 한글학교다.
삼광사(주지 화산) 한글학교는 4년제로 운영되며 한 학년에 평균 100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40~42주간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3번씩 진행된다. 1학년 커리큘럼은 한글 자음과 모음, 맞춤법 위주로 진행되고, 2학년은 단편소설과 전래동화 위주로 읽고 쓰기, 3학년은 삼귀의례와 사홍서원, 신묘장구대다라니, 반야심경, 부모은중경, 금강경 등 경전을 공부한다. 최고학년인 4학년은 사성례, 무상계, 장엄염불, 영가법문 등 고난이도의 경전과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 한글을 마스터하게 된다.
보통의 학교와 똑같이 여름과 겨울 2차례 방학하고, 봄과 가을에는 소풍 겸 수학여행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온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당당히 선출된 반장도 있고, 방과 후 교실을 청소하는 당번도 있다. 이곳에서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른 열외란 없다. 쌩쌩한 65세 박순이 반장도, 80세 최고령 김금순 할머니도 공평하게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틀림없이 교실을 깨끗이 쓸고 닦는다. 이날 당번은 2분단, 최고령 김금순 할머니의 차례가 돌아왔다. 얼른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가방을 둘러매고 청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중학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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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순 할머니는 “그동안에는 그냥 기도하러 올라오던 중에 내가 줄줄 외우는 불경을 읽고 쓸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며 “책상에 앉아있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어느새 글자를 잘 쓰는 내가 신기하다”고 말했다.
2학년 유일의 청일점 남태영(65) 할아버지는 2차례 수술 후 흐려진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입학했다. 그는 “글자는 맞춤법에서 뜻이 나오는 건데 머리 수술을 하고 나니 자꾸 깜빡깜빡해서 매일 글을 읽고 써야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2시간 수업 사이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차임벨은 없다. 오전 10시 1교시를 시작하고, 10시 40~50분 쯤 되면, 선생님이 칠판에 오늘의 받아쓰기 10문항을 판서한다. 이때부터 2교시 시작 전까지 약 20분간 자율적으로 쉬면서 받아쓰기 대비 예습을 하고 있다. 물론 받아쓰기는 문제와 정답이 똑같아, 답을 미리 알려주고 시험을 치는 셈이다.
정기은 선생님은 “성적을 평가하는 것보다 보다 재미있고 능률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평균 90점이 넘는 진기록을 매일 경신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50점을 받는 학생들도 간간히 있다고 했다.
삼광사는 삼광한글학술상과 대학생 논문대회 등을 통해 소중한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아낌없이 후원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0월 9일 제563회 한글날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주지 화산 스님은 허남식 부산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기도 했다.
정오, 수업이 끝나자 한껏 곱게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손잡고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나간다. 이들을 붙잡고 어딜 그리 바삐 가시냐고 물었더니 ‘좋은데’ ‘데이트하러’ ‘맛있는 것 먹으러’ 간다며 10대 여고생들처럼 꺄르르 웃었다. 삼광사 한글학교는 70평생 살며 글을 몰라 당한 설움을 씻어주는 것 이상으로, 1920~1940년대 암울했던 현대사에 빼앗긴 학창시절까지 되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