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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불교를 만난 박성배 교수는 현재 美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학센터를 설립하고 소장도 겸하고 있는 박 교수는 매 강의마다 학생들에게 ‘사고하는 법’을 강조해서 가르치기로 유명하다. 그는 학생들에게 ‘비이원적’ 사고를 하는 법,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을 자신의 생활에 실천하는 법을 가르친다.
1933년 9월 21일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박성배 교수는 작은 농촌에서 보내며 소위 ‘자연교육’을 통해 공동생활과 자비의 실천을 배웠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주변 사람들을 잃는 그는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진정 배우고 싶은 것은 인문학, 그중에서도 부처, 예수, 모하메드, 공자 등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박 교수는 조계종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했다. 두 번의 출가와 환속, 도미 후 신학대학 재학, 다시 불교 공부로 이어진 그의 일생은 성철 스님 상좌라는 타이틀 이전에 재미불교학자로 현대불교학의 산증인임에 틀림없다.
1955년부터 2년 동안 대흥사에서 전강 스님의 지도로 참선 수행했다. 1956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철학과에 들어가 1960년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63~1969년까지 동국대 교수를 지냈다. 1966년 봉은사에서 대학생 수도원을 설립하여 지도 교수를 맡았고, 1966~1968년까지는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 지도로 참선 수행했다.
박성배 교수는 1969년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직을 돌연 사직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40대 늦깎이 유학에, 낮에는 노동판에서 일하고 밤에는 책을 보며 고된 생활을 했다. 주경야독의 생활을 하며 그는 1971년 텍사스 남감리교대에서 석사학위를, 1977년 버클리대에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교수는 동국대 교수 자리를 버리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머물고 있는 이유를 “불교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서양인들에게 불교를 제대로 알리려면 그 나라 종교부터 먼저 알아야했다”고 말했다.
박성배 교수는 불자들에게 이원론적 사고를 여읠 것을 당부했다.
“비이원성 즉 불이(不二)는 ‘분쟁을 끝내는 열쇠’입니다. 그러려면 두 개의 존재가 ‘나’라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사려 깊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