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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ㆍ몸짓 패러다임’ 영문판 발행
박성배 교수, 미 스토니브룩大 ‘북스토어 뉴스레터’에 소개
미국 불교학계 원로이자 美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 중진교수로서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려온 박성배 교수(76). 노교수의 일생을 회향하는 대작인 불교철학 에세이집 <몸?몸짓의 논리>는 2007년 국내판 출간부터 큰 관심을 모아왔다.

최근 美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 북스토어 뉴스레터 9?10월호(이하 뉴스레터)에서 박성배 교수와 저서 <몸?몸짓의 논리(The Mon/Momjit Paradigm)>영문판(뉴욕주립대 출판부 刊)을 2면에 걸쳐 다뤘다.

뉴스레터는 “한국불교를 새로운 시각인 몸-몸짓의 패러다임으로 소개하는 책이 영어권에서 발행됐다”며 “박 교수의 이번 책이 신선한 이유는 성철 스님 상좌로 3년간 출가했었고, 미국에서 한국학과 불교학을 가르쳤으므로 한국 불교권과 영어권의 양쪽 세계에 실질적 경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됐다. 박성배 교수는 제1장에서는 몸-몸짓을 정의하고 본질과 현상, 체와 용이라는 두 개 차원이 인간의 삶에 공존함을 말했다. 제2장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몸-몸짓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도구로서 화두선을 설명했다. 제3장에서는 한국의 다른 가르침으로서 원효의 <대승기신론>, <금강삼매경>, <금강경>, <육조단경>, 지눌과 유교 등을 소개했다. 현재 생활에의 적용을 다룬 제4장에서는 문자문화와 무문자문화, 수행의 단계들을 말했다.

박 교수의 ‘몸-몸짓 패러다임’은 불교의 체용론(體用論)을 쉽게 풀이한 것으로 이해된다. 박성배 교수는 “체는 본질적으로 내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체가 움직여 일을 하는 면을 용이라고 한다. 용은 현상적이고 외적이며 눈에 보인다. 이 체용은 불가분의 불이적 관계에 있다. 편의상 체와 용을 몸과 몸짓으로 바꿔 이야기하자면, 몸이 움직여 일을 하며 드러나는 것이 몸짓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몸짓 뿐이지만 둘은 원래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더 나아가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생활에 ‘몸-몸짓 패러다임’을 연장 적용하면 오래 전 나와 전체의 구분이 없었던 동양사회처럼 평화롭고 수준 높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박성배 교수의 ‘몸-몸짓 패러다임’은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1965년 7월 31일 대학생불교연합회 구도부 학생 13명과 경북 김용사에 갔던 박 교수는 3000배도 모자라 산 정상까지 등산을 다녀오고 나서야 성철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박성배 교수는 스님에게 구도부가 당면한 어려움의 원인을 상담했고, 성철 스님은 단 한마디의 말로 명쾌하게 대답했다. “눈이 용(用)에 쏠려 있구나(You are attached to momjit).”

박 교수는 “현대인에게 화두선 만한 좋은 수행은 없다”고 주장했다. 화두를 들고 있는 동안은 애쓰지 않아도 삼독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오계를 지킬 수 있으며, 공리적 동기에 휘둘리지도 않고, 6개 감각기관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조주의 ‘무(無)’자 화두에서 ‘왜 무라고 했을까’라고 의심하는 것은 성바오로가 부활한 예수를 만난 일화와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였다.

성바오로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인 구원자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려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예수의 비전에 감동 받아 그리스도교의 대변인이 됐다.

박성배 교수는 “수행자에게는 오직 화두의 의문만이 있을 뿐 깨달음의 문제는 안중에 없다. 이런 진실한 마음은 개인의 모든 시스템에 충격으로 다가오고 그로 인해 업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처님,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 교수는 불교용어의 잘못된 영역을 강하게 지적했다. “<육조단경>의 ‘무념(無念)’이 ‘no thought’로 번역된 것은 잘못이며,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인 사고법인 이원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주체와 객체,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무념은 이원론의 ‘무’를 얻어 수행자를 부처의 생각과 맞추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성배 교수는 “무념=이원적 생각이 없음=부처의 생각”이라며 “무념은 생각이 없다거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몸짓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9-09-30 오후 8: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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