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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누구나 이런 상상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퇴근길 회사 앞에서 꽃을 들고 서있는 모습.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런 장면이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가슴 설레고 떨리겠는가.
일휴 김양수 화백은 이런 여심(女心)처럼 자신도 설레고 싶었던 것일까. 아님 회사 앞에서 꽃을 들고 서있는 연인처럼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석가께서 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께서 미소 지었다. 달마께서 오늘 내게와 꽃을 들면 나는 미소 지을 수 있을까.”
10월 6~31일 합천 해인사에서 열리는 김화백의 이번 개인전 속의 달마 대사는 꽃을 든 채 초연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꽃을 든 달마 대사의 모습은 어딘가 심각해 보이기도 하고, 누굴 기다리는 듯 설레어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달마가 꽃을 들고 있음으로 인해 달마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은 곧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며 “세상이 꽃 한송이를 통해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느끼듯 서로가 미소 지으며 소통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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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인전에 전시되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제목이 없는 무제(無題)들이다. 그가 작품들을 모두 무제로 한 이유는 제목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각자의 감성으로 그림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인지 꽃을 든 달마 대사의 모습은 더 아련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원철 스님(해인사 문수암)은 김양수 화백의 그림에 대해 “언어를 다 집어던진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선화(禪畵)”라고 말했다. 원철 스님이 김화백의 그림을 두고 이렇게 지칭한 것은 그가 작업을 위해 문명을 떠나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은둔생활을 하는 이유도 한 몫 한다.
김 화백은 자신의 작업실을 ‘적염산방(寂拈山房)’이라 이름 짓고 고요를 잡기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작업과 수행에 몰두하고 있다. 작업실은 그에게 더 이상 단순한 작업실이 아닌 수행처인 무문관이다.
‘적염산방’을 두고 원철 스님은 “그 이름은 ‘염화실(拈花實)’을 떠올리게 만든다”라고 했다. 염화실은 부처님께서 꽃을 집어든 곳인데 그의 산방도 “고요함을 들어 보인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김화백의 호가 일휴(一休)인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지어졌다.
그는 “쉬어야만 고요함을 잡을 수 있다”며 “그러한 이유에서 아호를 일휴라 지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의 작업실은 몸과 마음 모두 푹 쉬는 곳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도 모든 걸 내려 놓은 듯 편안하다.
꽃을 들고 기다리는 연인의 모습에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 김 화백의 개인전에서 달마 대사의 꽃을 든 모습을 통해 그가 전하는 고요함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