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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겨울에 왔을 때 하얀 눈을 밟으며 마당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하얀 눈 위에 찍힌 큰스님의 발자국을 따라 염화실까지 걸었던 기억도 나고, “이번 안거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온다”며 “빗자루 들랴, 화두 들랴 여느 때보다 바쁘다”고 말씀하셨던 큰스님 생각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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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실 담장 너머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큰스님을 모시고 스님들이 후원으로 간다. 저녁 공양 시간이다. 큰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시자 스님은 큰스님 지팡이랑 똑같이 걷는다. 선방을 지나고, 군데군데 꽃무릇을 지나고, 노랗게 고개 숙인 감나무를 지나고, 향냄새 가득한 법당을 지난다. 밥 냄새가 난다.
나오는 길에 부도밭이 보인다. 부도들 뒤로 꽃무릇이 피어있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 소리가 들려오고, 길어지는 부도의 그림자 끝은 이내 붉게 물들어간다.